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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방통위 https 차단, 공론 영역으로 나와야 한다
  • 안병도 칼럼니스트
  • 승인 2019.03.03 16: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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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는 현 방통위원장 부임 초기, 편안한 간담회 자리에 참석한 적이 있다. 그때는 텀블러 서비스에 음란물이 자주 올라오는 점이 이슈가 되었고, 방통위에서 텀블러 측에 음란물 대응을 촉구하는 공문까지 보낸 상황이었다. 아직은 이전 정권의 분위기가 있어서 텀블러 측이 협조하지 않으면 서비스 자체를 전부 차단할 수도 있다는 의견까지 제기되던 때였다.

그때 기자는 관련 질문을 한 뒤에 "(텀블러측의) 반응이 없으면 정말 차단하실 겁니까?" 라고 물었다. 그러자 방통위원장은 정색을 하고서는 "그건 쉽게 결정할 일이 아니죠. 언론자유의 문제도 걸렸는데..." 라고 대답했다. 정확히 말하면 언론자유보다는 개인 통신비밀 보호 문제에 가깝지만 관련이 없는 것도 아니고, 그만큼 새로운 방통위원장이 인터넷상 개인 통신자유에 대해 진보적 입장에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적어도 테러방지, 음란물 차단 등을 이유로 함부로 서비스 자체를 차단하는 일은 없을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건 기자의 예단이었을까. 지난 2월 12일, 방송통신위원회는 심의 결과 ‘차단 결정 대상’이 된 불법 해외사이트 895곳으로의 접속을 차단하겠다고 밝혔다. 이 사이트들은 보안접속인 https을 활용하고 있어 기존에는 접속차단이 불가능했던 곳이다. 대다수는 도박 사이트지만 해외에서는 합법, 국내에서는 불법인 성인물도 있고 마약이나 금지 약물 판매 사이트도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방통위의 기준은 국내법 상의 불법유무였으며, 음란물에 관해서는 몰카, 리벤지포르노 근절을 강력히 내세웠다. 또한 이 문제가 개인통신 비밀보호 차원에서 문제가 되자 이전 정권에서도 해왔던 것이며, 현행법상 불법을 내버려둘 수 없고, 암호화되지 않고 공개돼있는 SNI(Server Name Indication) 필드에서 서버를 확인해 국내 네티즌들의 접속을 차단하기에 감청이 아니라고 해명했다. 또한 방심위에서 결정한 사항을 통신사가 자발적으로 시행하니 정부 주도가 아닌 민간주도라는 식으로 책임을 회피했다.

그러나 이런 답변은 기자가 들었던 부임 초기 방통위원장의 말과는 상당한 괴리감이 있다. 분명 행정은 정권과 상관없이 일관성을 가져야 한다. 하지만 공익이나 자유를 침해할 여지가 있는 정책을 단지 이전 정권부터 해왔으니 문제없다는 식으로 주장하면 안된다. 그렇다면 이전 정권의 4대강 사업이나 민간인 사찰도 문제삼을 이유가 없이 지속해도 된다. 현행법 상 불법을 전부 차단해야 한다는 점은 원론적으로 맞는 말이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피해자가 특정되지 않고 주요 선진국에서 불법이 아닌 부분을 마구 단속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얼마전 폐지된 간통죄나 현재의 낙태죄가 강력한 단속을 하지 않았던 것도 바로 이런 모호함 때문이었다.

우리는 국가주도의 정책을 통해 빠른 경제성장을 경험한 탓인지 국가권력이 개인자유의 영역까지 법으로 압박하고, 단속하는 것에 무감각한 경향이 있다. 바로 얼마전까지 장발과 미니스커트를 단속하던 것에 항거하던 세대는 이제는 정책당국자가 되었다. 이 세대가 이제 성인에게 해외에서는 합법인 음란물을 보지 말라고, 차단하는 정책을 시행하면서 아무런 저항감을 느끼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옛날의 장발, 미니스커트 단속도 '미풍양속을 해친다'는 명분이 분명 있었다. 그러나 그 시대의 얼마나 그것에 공감했을까. 궁색한 기술적 변명보다는 이런 차단을 공론 영역으로 끌어올려 사회 구성원의 동의 하에 시행하는 것이 낫지 않을까? 방통위가 공문에 협조하지 않는 텀블러를 끝내 차단하지 않았듯이 이번 https 차단에도 보다 신중한 태도를 취했으면 하는 생각은 기자 혼자만의 아쉬움일까?

안병도 칼럼니스트  press@gamev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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