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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더스쿼드, 새롭고 오래 사랑받는 게임 만드는 회사 될 것"원더스쿼드 서관희 대표

국내에서 스타 개발자로 불리는 대부분의 인물들은 대표 게임의 흥행 뒤에 나름 평탄한 길을 걸었다. 위기가 있었다고 해도 보란듯 재기했고, 많은 이동 없이 큰 회사의 조직에서 게임 개발을 진두지휘하고 있다.

물론 예외의 인물들도 있다. 20여년간 게임 산업에 몸담으면서 모회사가 수 차례 바뀌는 상황을 겪었지만, '어스토니시아 스토리'부터 시작해 '화이트데이', '팡야', '앨리샤' 등의 게임에 참여하고 총괄해온 서관희 원더스쿼드 대표도 그 중 하나다. 

손노리라는 팬덤 강한 개발사의 프로그래머부터 여러 회사에 소속되었던 디렉터, 그리고 엔트리브소프트의 수장, 지금은 원더스쿼드라는 소규모 개발사의 대표가 되기까지 그가 걸어온 길과 그의 개발 철학, 후회, 그리고 원더스쿼드가 만들어가는 개발 문화와 게임들에 대해 서관희 대표가 밝힌 내용을 담았다. 더불어 원더스쿼드가 개발 중인 신작 게임도 최초로 공개한다.

▲ 원더스쿼드 서관희 대표

 

Q : 본격적인 이야기를 하기 전에 옛날 얘기부터 해보자. 서 대표에게서 손노리라는 회사를 빼놓을 수 없으니.
처음 개발을 시작하게 된 것은 고등학교 2학년때다. 향후 손노리 멤버들로 거듭난 또래 친구들과 모여서 같이 게임을 하다가 한 번 만들어보자고 의기투합했지만 고3이 되며 흐지부지됐다. 이후 대학교에 붙은 뒤 겨울방학동안 준비해 여름방학때 하이텔에 올린 게임이 바로 '어스토니시아 스토리'다.

올렸는데 반응이 너무 좋아서 자신감을 가지고 전철을 타고 서울에 와서 SKC와 LG소프트를 찾아가 게임을 보여줬는데 SKC에서는 무시당했고 LG소프트는 당시 외국 게임도 안 팔리는 패키지 시장 상황을 얘기하며 퇴짜를 놨다. 

▲ 1993년에 올라온 '어스토니시아 스토리' 데모. 서관희 대표의 이름도 보인다.

그런데 93년에 설립된 소프트라이에 아는 선배가 있어서 개발 지원을 받았다. 특히 사무실을 지원받았기에 각자 집에서 PC를 다 가져와서 합숙하며 개발했다. 나는 학업 때문에 뒤늦게 합류했는데 밥값 명목으로 30만원을 받아 4명이 함께 만들었다. 

그 뒤에 소프트라이 산하 교육기관인 게임스쿨 수강생 중에 특출난 재능을 보이던 이원술 대표를 영입했고, 1994년 7월에 '어스토니시아 스토리'를 출시했다. 

모두가 기획에 관여를 했지만 정식 기획서라는 것이 없었던 시기였다. 출시 전 잡지에 실린 게임 리뷰를 직접 썼는데 다시 그걸 보고 개발에 참고할 정도였다. 게다가 당시 나왔던 '이스2스페셜'도 욕을 먹는 상황이었는데 출시를 앞두고 준비가 덜 됐다. 

잡지에 사전예약 광고까지 해버린 상황에서 이 상태로 출시되면 큰일난다고 생각해 두려웠다. 그래서 팀원 모두 야반도주를 했었다. 그랬더니 소프트라이에서 "출시를 연기해줄테니 돌아가자"고 설득해서 한 달의 시간을 확보해 완성도를 올려 출시하게 됐다. 그래도 버그가 없는게 아니였으나 최악은 겨우 막았었다. 

이후 '다크사이드스토리'를 1년 뒤에 출시했지만 결과는 안 좋았다. 그리고 병역특례로 입사해 오락실 게임을 만들었다. 다른 멤버들은 이원술 대표의 집으로 들어가 개발을 진행하던 중 판타그램이 지원 의사를 밝혀 그쪽으로 들어갔고, 개발 중이던 '포가튼사가'에 합류했다. 하지만 이 게임도 예약 구매 후 1년이 지나도 게임이 나오지 못했다.

▲ 서관희 대표를 유명하게 만든 사진 한 장, 바로 '맥스 폐인'이다.

그러던 1998년에 멤버들이 손노리라는 이름으로 법인을 세웠고 그쯤 나는 병역특례가 끝나 합류하게 됐다. 이때 내부에서 고민하던 프로젝트가 '강철제국'이었고, 다른 하나는 '바이오하자드'에 감동받아 개발을 시작한 공포게임 '화이트데이'였다. 그런 상황에서 여러 인물들을 만나게 되는데, 하이텔 게제동(게임제작동호회)의 시삽이었던 김학규 대표를 비롯해 김광삼, 김건, 김동건, 이은석 등의 개발자들과 친하게 지냈다.

당시 김학규 대표는 아트크래프트 팀에서 '리크니스'를 만들었는데, 그 이후 자신과 함께 개발하자고 해서 만들기 시작한 게임이 '악튜러스'였다. 그리고 당시 설립된 위자드소프트와 계약해 게임 3개를 출시하기로 하고 '강철제국'을 선보였다. 

그 뒤 '화이트데이'를 만들던 도중 김학규 대표가 "'악튜러스' 출시가 얼마 안 남았는데 게임이 안 돌아간다. 도와달라"고 해서 '화이트데이' 개발을 멈추고 모두 그라비티에 몰려가 복도에서 잠을 자며 3일간 3교대로 총력전을 펼쳐 출시했었다. 이후 만들던 '화이트데이'를 검토하고 다시 한 번 뒤집기로 결정, 개발을 거쳐 2001년 출시했다. 


▲ '화이트데이' 패키지에 들어있었던 개발 후기 영상

당시 손노리의 멤버는 4~50명으로 '강철제국'과 '악튜러스', '화이트데이' 등 3개의 타이틀을 출시해 유명해졌지만 돈을 벌지 못해 어려움을 겪었고, 손노리는 이후 로커스홀딩스에 인수돼 게임사업부가 됐다. 그 뒤에는 플래너스엔터테인먼트에 합병됐고 플래너스는 넷마블(당시 CJ인터넷)이 되었다. 당시에는 PS판 '어스토니시아 스토리'를 만들고 있었는데 우리도 온라인 게임을 해야겠다고 생각해 '팡야'를 계획하기 시작했다.

플래너스에서는 온라인 게임 개발 경험이 없던 우리에게 넥슨을 연결시켜 주었고 잠시 같이하다가 결국 직접하는 것으로 결정되었다. 그 당시에 개발하던 게임이 '카툰레이서'와 '몬스터 구루구루', '팡야'였다. 그러다 분사하여 '트릭스터'와 '팡야'를 갖고나와 엔트리브소프트를 만들며 손노리라는 이름과 작별했다. 

 

Q : 그래도 작별 이후 엔트리브는 손노리와 달리 흥행작을 만들어냈다. 하지만 모회사의 변화는 여전했는데?
분사 이후 10여곳의 퍼블리셔에 프레젠테이션을 했고 결국 한빛소프트와 '팡야'를 계약, 2004년 런칭했으며 게임팟과 계약해 일본에서 결과가 아주 좋았다. '트릭스터'도 일본에서 잘 돼서 회사도 많은 발전을 이뤘다. 두 게임이 잘 되던 2007년은 건물 층도 많이 쓰고 제일 성장한 시기였던 것 같다. 

여기서 다양한 변화를 겪었는데, 모회사가 CJ인터넷에서 싸이더스HQ(=iHQ) 그리고 iHQ를 SK텔레콤이 인수한 뒤에 SK텔레콤의 자회사로 변경되었다.

▲ '팡야' 이후 엔트리브 최고의 효자 게임이었던 '프로야구 매니저'. 세가가 만든 '프로야구 팀을 만들자'가 원작이다.

당시 테크모에서 '팡야'의 Wii 버전을 만들고 싶다고 해서 런칭 9개월 전부터 준비했는데 그들은 정말 열심히 해줬었다. 테크모의 개발진 100여명이 투입되어 빠르게 해준덕에 정식 런칭 타이틀이 되었다. 그리고 SK텔레콤의 지원으로 세가의 '프로야구 팀을 만들자'를 가져와 한국식으로 고친 '프로야구매니저'를 만들게 되었다. 열심히 해서 성공했지만 SK텔레콤의 게임 사업 중단 결정이 내려졌고 엔트리브는 엔씨소프트에게 인수됐다.

SK텔레콤 자회사가 되었을때 다양한 프로젝트 12개를 동시에 진행했었는데 이후에 자금 사정으로 프로젝트를 정리하고 집중하게 되었다. 그 중 하나가 '앨리샤'였는데 일본과 큰 규모로 계약했다. 그래서 '앨리샤'의 팀장을 맡아 2년 더 개발해 출시, '아이유 게임'으로 불렸다. 하지만 지표가 계속 떨어지니 다시 만들기로 결정, 버전 2.0을 표방하며 1년 더 개발했다. 

그런데 그때부터 게임 시장 환경이 모바일로 바뀌기 시작했다. 하지만 회사의 달성 목표가 있어서 쉽게 모바일을 시작하지 못했다. 여러 모바일 게임들의 대박 행진 속에서 온라인 게임만 서비스하던 회사의 매출은 떨어지고 있었고, 넷마블은 '다함께 차차차'와 '다함께 퐁퐁퐁'으로 확 뜨면서 역사가 바뀌었다. 

이후 경영진에서 빠져 모바일 게임 개발을 시작, 이후에 회사에 많은 모바일 프로젝트가 시작되었지만 너무 늦은 편이였다. 2년 동안 대표가 3번 변경 되는 부침속에 본인도 대표를 맡아 회사를 바꿔보려 했지만 단기간에 성과를 내지 못하고 회사를 퇴사하게 됐다.

돌이켜보면 손노리때부터 여러 번의 기회가 있었는데 막상 만드는 게임에 빠져서 이를 보지 못했다. 1994년에 '어스토니시아 스토리'를 만들때 다른 사람들이 머그(MUG) 게임을 만들고 있다고 해서 봤는데 8비트 시절 그래픽으로 만들어서 대수롭지 않게 넘겼었는데 그게 나중에 온라인 게임이 됐다. '스타크래프트'가 한창 인기 있을때는 PC방도 안 가서 온라인 인프라를 늦게 경험했다. 

'화이트데이' 개발 당시에는 우리가 3D 기술력이 좋았고 이를 기반으로 '오!재미'도 만들었는데, 당시에 막상 우리가 심심할때 하던 건 '카운터스트라이크'였다. 그 기술로 온라인 FPS를 만들었어야 했는데 학교라는 소재에 생각이 묶여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엔트리브 시절에도 '팡야'와 '트릭스터'의 성과가 나고 다양한 프로젝트를 시작했는데 결과로 나오지 못했고 이것이 경험으로 쌓이지 못했다. 출시되면 유지 비용이 크니 이걸 따지게 됐었다. '앨리샤'때는 금전적-업무적으로 부담감이 많았다. '팡야'라는 성공작이 있으니 강박증이 생겼달까? ‘앨리샤’를 만들며 8년을 보냈는데, 한 번 성공 경험이 있는 사람이 다른 게임을 만들 때 좀 더 제대로 하려고 시간을 더 들이는 함정에 빠지게 된 것이다. 그나마 잘 나오면 다행인데, 만들다가 접히면 시간과 경력이 다 날아간다. 

그래도 모바일 환경이 개발자에게 좋은 게, 온라인 게임처럼 오래 만들지 않아도 되고 출시 후 피드백을 받아볼 수 있어서 성장하기에 좋은 시장이라고 생각한다. 온라인 게임은 만들다가 접히면 뭐가 문제인지 모르고 성장을 못한다. 게다가 시장은 빨리 바뀌기에 오래 만드는게 힘들다. 

20년간 재미있었던 사실은 손노리부터 엔트리브까지 계속 아는 형님이 대표였다. 그리고 독립적이었던 시기는 손노리 창업 후 2년과 엔트리브 창업 후 1년 뿐이었고 나머지는 다 모회사가 있었다. 서로 장단점이 있지만 배우는 것도 많았고, 이런 과정을 거치며 게임 업계가 발전하는 틈바구니에 있었다. 


Q : 오랜 기간 개발에 몸 담다가 1년 조금 넘게 엔트리브의 대표 생활을 했다. 회상해보면 어땠나?
여러가지를 많이 해보려고 했지만 결국 못했다. 그 중에 먼저 생각나는 것은, 당시에 10년간 프로젝트 하나만 한 분들도 있었다. 시대가 급변하기에 그 분들도 다른 프로젝트를 해야 하는데 적응하려면 시간이 많이 필요하다. 그만큼 이탈 확률이 높아진다. 나는 좋은 게임은 개발팀에서 나온다고 생각해 최대한 퇴사를 막는 이탈율에 신경썼다. 

그러다보니 불만을 설득하고 여러가지 조치를 했는데 그 조치가 회사 입장에서는 문제 해결을 위한 것이었지만 그 사람의 입장에서는 발전의 기회를 놓친 거다. 퇴사를 막으려다 더 중요한 걸 놓쳤다.

좋은 게임을 만드려면 다른 사람들도 들어오고 싶도록 했어야 하는데 그저 좋게좋게 관리만 하다보니 사람들이 새 도전을 못해보고 환경 변화를 접하지 못하게 했다. 이는 회사가 노후화되는 느낌도 들게 했다. 그만큼 잘못한 게 많다. 그때는 주어진 것에 최선을 다했다고 생각했는데, 한다고 했지만 적극적으로 못했다. 정책적으로 못한 것들도 있다. 직원들의 휴가나 호칭 등을 바꿔보려 했는데 시간이 많지 않았다. 

12년의 엔트리브 생활에서 런칭된 게임과 개발이 중단된 게임을 다 합치면 105개 정도 된다. 그 중 성공한 건 '팡야'와 '프로야구매니저' 2개 뿐이다. 나머진 다 까먹었다. ‘트릭스터’는 초기에 큰 성공을 이뤘고 오래 인기를 끌어지만 누적으로 보면 아쉬움이 남았다. 예전에 게임의 성공 확률이 낮다고 할 때는 그냥 그런가보다 했는데 돌이켜보면 우린 그보다 더 낮았다. 2개의 게임이 12년간 다른 프로젝트를 먹여살린건데, 다른 결정을 했다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있다. 

그리고, 모회사와의 관계나 안과 밖에서 여러가지를 배웠고, 당시 새로운 것을 하기 보다 회사가 벌려 놓은 것을 정리하는 일을 많이 했었다. 게임 런칭도 있었지만 여러 기존 계약 종료를 위한 협의와 온라인 사업부를 정리하고 매각하고 함께 했던 인력을 보는 과정 등에서 사람들이 피해보지 않도록 노력하는게 힘들었다. 정리하는 일들을 많이 했더니 사업의 시작과 끝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하게 되는 시기였다. 

▲ 서관희 대표에게 아이유 게임으로 불렸던 '앨리샤'는 여러가지로 중요한 게임이었다


Q : 특히 '앨리샤'는 오랜 기간 개발해 더 남다를 것 같다.
다 애착이 가지만 제일 길게 개발한 건 '앨리샤'고, 좋은 결과를 못 만들어 아쉽고 안타깝다. 게임성만큼은 좋았고 가능성이 높은 게임이었는데, '차라리 콘솔로 나왔으면 좋았을텐데' 라는 생각도 했다. 

나는 내가 만든 게임을 재밌게 하는 사람을 볼 때 제일 즐겁다. 전에 '어스토니시아 스토리' 출시 후 고향에 내려가는데 전철에서 중학생들이 '어스토니시아 스토리' 얘기를 하는 걸 봤을 때, 그리고 '팡야'가 태국의 국민게임으로 등극했던 시절에 태국의 건물 한 채가 PC방인 곳에 1층부터 6층까지 있는 PC 중 90%가 '팡야'를 하고 있었고 '팡야'의 오프라인 대회에서 온 가족이 응원하는 걸 봤을 때 즐거웠다. 

그리고 예전에 오락실 게임인 '로직프로 어드벤처'를 처음 만들어 일본에 수출했는데 내가 만든 게임을 일본인 커플이 재미있게 하는 걸 봤을 때 즐거웠다. 나는 일본 게임을 하며 커왔는데 내가 만든 게임을 일본인이 하는 걸 보니 더 남달랐다. 그런 면에서 '앨리샤'는 안타까운 게임이다.


Q : 그런데 애질런트 테크놀로지스라는 바이오 회사가 '앨리샤' 상표를 쓰겠다며 상표권 등록 취소 청구를 했더라.
'앨리샤'는 네이밍 업체를 두 번이나 바꿔가며 만든 이름이다. 여러 리스트 중에 '앨리샤'가 있었는데 스펠링을 조금 바꿔 최종 결정했고 그냥 이름만 있으면 심심하니 '말과 나의 이야기'라는 캐치프레이즈를 붙인 것이다. '팡야'의 경우에는 내가 이름을 냈고 투표에서 최종 결정됐다. 상표권 문제는 분야가 다르기 때문에 상표권이 취소되진 않을 것이다. 그리고 '앨리샤'는 향수를 가진 유저들이 많아서 모바일 게임으로 나오면 좋아할 것 같다.


Q : 한동안 잊혀졌던 '화이트데이'가 모바일과 콘솔 버전으로 다시 부각됐었는데?
이전 게임을 다시 만들 때는 백업이 중요하다. 디렉터였던 이은석 님이나 다른 분들이 백업을 잘해둔 것을 내가 보관하고 있었고, 이원술 대표가 진행한다고 할 때 공식적으로 전달드렸다. 물론 실제로는 거의 다 새로 만드신 것으로 알고 있다. 

예전에 GP32로 '어스토니시아 스토리 R'을 만들었을땐 '어스토니시아 스토리'의 소스 일부가 깨지는 바람에 사용을 할 수 없어서 처음부터 다시 고생해서 만든 기억이 있다.


Q : 원더스쿼드를 창업하게 된 계기와 방향성은?
손노리가 인원이 가장 많을 때가 150명 정도였고 엔트리브에서는 300명 이상이 일했었는데 매출을 좇다 보니 새 시도를 못했고, 어쩔 수 없는 상황이었다. 그래서 시대에 맞춰 빨리 나아가려면 어떻게 해야하나 생각했다. 엔트리브를 퇴사할 때 여러 곳에서 제의를 받았는데 그렇게 되면 지금까지 해온 것과 같다고 생각했다. 회사에 들어가면 회사에 맞는 필요한 것을 해야 하기에 새로운 시도를 하려면 회사를 만들어야 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차린 것이다. 

모바일과 온라인으로 구분하는 것이 아니라 전 세계에서 통할 수 있는 게임, 함께 즐길 수 있는 게임, 긴 시간 사랑받을 게임을 만들기로 결정했다. 그래서 회사를 설립했고 프로토타이핑을 하다가 나온게 '워봇 아이오'다.  

물론 한 번에 잘 될 수는 없다. 안 되더라도 기술력이 쌓이고 경험이 될거라 생각한다. 글로벌 서비스를 하면서 이것저것 경험했고 느낀 것을 바탕으로 다른 방향으로 개선해 다른 게임을 시도 중이다.

1년에 프로토타입을 7~8개 정도 만든다. 괜찮은 게 있으면 한 달 더 해보고 더 할지말지 정해서 정하면 진행하고 아니면 묵혀둔다. 나중에 다시 할 수도 있다. 요즘 게임은 믹스 앤 매치(Mix & Match)다. 하나가 아닌 퓨전 장르가 많아진다. 프로토타입을 통해 쌓은 경험을 다른 게임에 적용하는 것과 마찬가진데, 그래서 지금의 '타임 서바이버'가 만들어지게 됐다. 

이처럼 새로운 부분들을 시도할 수 있는 회사를 만들고 싶었고 다양한 프로젝트를 시도하고 있는데 어느새 3년째가 됐다. 의도대로 되고 있는지는 모르겠다.(웃음)


Q : 첫 출시 게임이 '워봇 아이오'다. 아이오(io) 게임에 관심을 가지게 된 계기는?
아이오의 역사가 길지 않다. 처음에 세포키우기 게임인 '아가리오'(agar.io)가 웹으로 나왔는데 많이 퍼졌다. 플레이 시간은 짧지만 트래픽이 꽤 나오며 미니클립이 모바일 판권을 사와서 만들었다. 그걸로 서비스를 시작해 모바일에서 2~300만 DAU(일일접속 유저)를 달성했다. 

그리고 2016년 3월쯤 ‘지렁이 아이오(=슬리더리오, slither.io)’가 처음 나와서 아이오의 확장성에 놀랐는데 렉이 너무 많아서 욕을 엄청 많이 먹었다. 그 뒤에 '스네이크 아이오'가 등장해 렉이 없는 게임으로 어필, 수백만 다운로드를 기록했는데 알고보니 싱글 게임이었던거다. 

그 뒤에 '슬리더리오'도 싱글을 넣어 DAU가 500만을 돌파, '아가리오'를 넘어섰다. 개발자 인터뷰를 보면 하루에 광고 수익이 1억을 넘는다고 한다. 또한 '아가리오'를 기반으로 중국에서 자이언트가 만든 '배틀오브볼스'(국내에는 'BOB with 라바'로 출시)는 다운로드 2억회를 기록하며 포텐셜이 터졌다. 그 뒤에 나온 '페이퍼 아이오'는 땅따먹기 아이오가 몇 개 있었음에도 나와서 히트를 쳤는데 멀티처럼 보이지만 싱글 게임이다. 사람들은 멀티인 줄 안다. 

이처럼 사람들이 멀티를 좋아한다기 보다는 게임이 싱글이어도 멀티의 느낌을 주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또한 아이오에서 다양한 장르의 시도가 있었는데 '슬리더리오'나 '아가리오' 말고 뜬 게임은 없었지만 제대로 만들면 새로운 붐을 일으킬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사실 예전에 드랍된 프로토타입 중에는 '배틀로얄' 장르도 있었는데 이렇게 스트레스가 큰 게임을 유저들이 할까 우려했지만 '배틀그라운드'가 멋있게 풀어주니까 흥행했다. 새로운 장르가 탄생하는 장면들이 그런데서 나온다. 그전까지 마이너 장르였는데 말이다. 아이오 장르 역시 그런 가능성이 높고 도전할 카테고리라 생각했다. 결과적으로 아이오가 발전하면서 여러 기능이 들어가면 그게 샌드박스 MMO에 가깝다고 본다.  

또한 우리가 볼 때 많은 사람들이 할 수 있고, 누구나 좋아하고, 언제라도 할 수 있고 끌 수 있는 게임이 모바일에 맞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즐기는 것이 콘텐츠가 될 수 있는 멀티플레이 게임을 만들고 싶었고 그런 게 오래 간다고 생각해 그런 스타일의 게임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위의 게임들처럼 아이오는 스낵커블(Snackable, 가볍게 소비하는) 게임이다. 이것의 발전형이 뭘까 생각했을 때 이걸 로보트로 만들면 어색하지 않고 다양한 무기를 쓰고 생각해 기획을 진행, 프로토타입을 해보고 재밌다고 생각해 '워봇 아이오'를 출시했다.

▲ 원더스쿼드의 첫 출시 게임, '워봇 아이오'


Q : '워봇 아이오'의 성과는 어땠나?
게임 자체는 재밌지만 밸런스를 더 고치지 못해 아쉽다. 조작을 어렵게 했고 밸런싱을 잘 하지 못했다. 그리고 첫 게임치고 길게 만들었다. 그걸로 많은 걸 느꼈고 다음 게임을 개발하는데 도움이 됐다.

기회가 되면 패치하고 싶은데 다음 게임을 만들고 있어 여건이 안 된다. 계속 서비스하고 있는 만큼 기회가 되면 패치와 함께 세일즈도 할거다. 


Q : '워봇 아이오' 이후 어떤 게임을 개발 중인가?
얼마 전에 데브캣 김동건 본부장이 공개한 '사파리 배틀로얄'과 생존 게임인 '타임 서바이버', 로그라이크(Rogue-Like) 슈팅 게임인 '토쿤', 레이싱 게임인 '슬롯카 레이싱', 그리고 방치형 게임 등을 만들고 있다. '타임 서바이버'를 제외한 대부분의 게임 이름은 아직 가칭이다.

지금 집중하는 건 '타임 서바이버'와 '슬롯카 레이싱'이다. '타임 서바이버'의 비중이 가장 크고 '슬롯카 레이싱'은 틈틈이 만들고 있다. 프로토타입은 아이디어가 나올 때마다 만들고 있다. 그래서 사람들에게 보여주고 반응을 보고 가능성을 본 뒤 진행하는 방식으로 이뤄진다. '토쿤'의 경우 내가 기획하다보니 너무 방대해져서 일단 홀딩 상태다.  

모바일 게임은 론칭 후 1년 뒤에 매출이 안 나오면 접어버린다. 유저 입장에서는 즐기는 게임이 접히면 애써 키운 캐릭터도 사라지기 때문에 키운 게 아깝다는 생각이 든다. 이렇게 되는 문제는 회사 입장에서 유지비가 비싸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는 비용 최소화에 신경써서 계속 유지하는 방향으로 잡고 있다. 

▲ 최초로 공개되는 원더스쿼드의 신규 프로젝트, '슬롯카 레이싱'이다. 원버튼 방식으로 가속과 감속을 통해 코스를 이탈하지 않고 최대한 빨리 트랙을 도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Q : 적은 인원에도 이같은 다작의 게임 개발이 가능한 이유는?
현재 총원이 7명인데  메인 게임이 하나 있고 공백이 생길때 서브 게임을 개발하는 정도다. 틈날 때 하는 거다. 하나의 게임이 영 진전이 안 되면 2주 정도 하던 걸 멈추고 다른 게임 개발을 하기도 한다. 그리고 주로 유니티를 쓰기에 개발 속도도 빠르다. 


Q : 다작은 대표의 의지인가? 아님 직원들의 의지인가?
결국은 대표의 의지인데(웃음) 내가 끌고 왔다기 보다는 모두가 아이디어가 나오면 말에서 끝나지 않고 일단 만들어본다. 그래서 버린 것도 많다. 3일 정도 해보고 괜찮으면 더 해보고 한 달 정도 되면 더 할지 말지를 결정한다. 아이디어는 버리지 말고 틈 날때 해보며 멤버들이 공유한다. 어떤 아이디어가 새롭게 돋보일지는 모르지만 버리기보다는 일단 해보고 시간이 지난 뒤에 또 해본다. 

원격으로 조종해 홈이 파인 트랙을 질주하는 대표적인 레이싱 완구인 슬롯카를 게임화한 '슬롯카 레이싱'도 개발이 상당히 빨리 진행되고 있는데, 그 전에 레이싱 게임의 프로토타입을 몇 번 만들어본 경험이 반영됐다. 프로그래머는 두 분이지만 실력이 있으셔서 빨리 나오고 반영된다. 각각 2명씩 파트가 나뉘어있는데 아이디어가 있으면 제안서를 내서 프로토타입을 만든다.


▲ 실제 슬롯카 레이싱 영상. 여기서 느끼는 재미를 게임에서도 느낄 수 있도록 개발 중이다

그리고 완성도는 2개 정도를 진행할 때 나오는 것 같다. 물론 공을 들이면 완성도는 올라간다. 공을 많이 들이면 그만큼 시간을 쓰는데, 문제는 하나로 시간을 끌면 안 된다. 그래서 병행하는 것이다. 남는 시간에 다른 걸 하면서 각각의 프로젝트의 완성도를 높이는 숙련의 시간이다. 하나를 빨리 하기보다 2~3개를 병행하고 있는데, 이게 꼬이면 안 되기에 그걸 연습하는 과정이다. 4개까지는 힘들어서 최대 3개 까지는 동시에 진행하려 한다.


Q : 게임의 흥행은 곧 회사의 재정 안정성과 직결된다. 설립 3년차의 원더스쿼드는 어떨까?
최대한 인원을 안 늘리며 개발을 진행하고 있는데 그동안 출시를 안 했지만 올해는 출시 예정 게임이 있기에 이제 펀딩을 받아야 하는 상태다. 투자가 미뤄지긴 했지만 논의되고 있는 곳들이 있다. 

원더스쿼드를 창업할 땐 처음부터 자본에서 독립하고 싶었다. 하지만 엔젤 투자를 받았으니 그분들을 생각하면 회사를 성장시켜야 한다. 올해 론칭할 게임이 있으니 이를 위해 퍼블리셔들도 만나고 있으며, 게임성에 가장 어울리는 서비스를 할 것이다.

▲ 조만간 출시될 예정인 모바일 생존 게임 '타임 서바이버'


Q : '타임 서바이버'는 어떤 게임인가? 그리고 개발 계기는?
어떤 게임을 만들까 고민하다가 작년 봄이 되기 전 생존 게임에 관심을 가졌다. 캐릭터가 움직이며 상황에 대처하는 게임으로 팬층이 있는 장르다. 우리같은 인디 회사는 마케팅 자금이 없으니 게임이나 아트가 돋보이거나 유튜버나 스트리머들이 관심을 가질 수 있는 게임 개발로 포지셔닝해야 한다. 생존게임은 보는 재미가 있기에 스트리머가 좋아하는 장르 중 하나다. 잘 먹혀들어가면 우리 게임도 주목받을 기회를 받을 장르다. 

처음에 고민을 거쳐 프로토타입을 만들어봤는데 느낌이 안 좋았다. 옛날 콘솔 게임같은 뷰와 조작감이었다. 유저 입장에서 모바일 기기에서 시점을 자유롭게 바꾸는건 어렵다. 물론 지금은 '배틀그라운드 모바일' 덕분에 어느 정도 적응된 듯 하지만(웃음). 

그래서 카메라 회전 없이 시점을 고정시키고 패드로 이동하는 건 부담이 없을 거라고 생각해 이를 적용시켰다. 그리고 좀 더 스토리를 보강하다 보니 세계관을 넣게 됐고, 원래 비즈니스 모델을 부분유료화로 생각했다가 유료게임으로 추진 중이다. 이제는 퀄리티 있게 만들고 사랑받을 수 있을까 고민하는 시기다. 나름의 재미를 보여줄 수 있을거라 생각한다.

메인 프로그래머와 시나리오 담당자가 '화이트데이'를 만든 분이고 아트 담당자는 '팡야'를 만든 분이다. '타임 서바이버'는 공포가 없는 '화이트데이'의 느낌이라고 볼 수 있다. 

스토리는 미래에서 타임포탈을 통해 과거로 넘어와 미래를 바꾸는 이야기다. 매출이 나와서 개발이 계속 되면 이야기를 바꿔서 다시 할 수 있는 느낌으로 일종의 업데이트를 해주면 게속 즐기거나 멀티플레이를 넣어 함께 하는 재미도 주면 길게 하지 않을까 싶다. 생존은 함께 하면 재미있다. 이 게임은 월드를 통째로 로딩한 심리스라서 필드가 엄청 넓다. 작년 열린 BIC에서 공개한 것은 전체의 10%도 안됐다.

다른 월드로 바로 이동하며 즐기는 게임이라 향후 업데이트로 새로운 이야기를 넣을 수 있을 듯 싶다. 이 부분을 모델로 삼은 게임은 '더 와일드 에이트'다. 비행기가 불시착한 뒤 생존자 중 한 명을 골라 살아나가는 게임이다. 그 게임도 과거로 돌아가더라. 업데이트가 쉬운 플랫폼이라 충분히 가능하다. 

느긋한 마음을 가지고 스토리를 즐기며 내용들을 풀어나가는 어드벤처의 느낌으로 생존하고 아이템을 챙기는 독특한 게임이 될 것이다. 나중에 콘솔로도 낼 수 있을 듯 싶다. 완성도를 높이며 애초보다 규모가 커졌는데 집중하면 5~6월쯤 출시가 가능할 것 같다. '슬롯카 레이싱'도 마음에 들기에 이걸 병행하면 길어질 것 같다. 


Q : BIC 현장에서 '타임 서바이버'에 대해 어떤 이야기들을 들었나?
처음에는 조작성이 부족해서 자녀와 함께 할 만한 게임이라고 생각을 못했는데 오히려 초등학생들이 좋아하더라. 어린 친구들은 잘 읽고 보물찾기 하며 풀어가는 재미를 좋아했고 여성들도 좋아했다.

우린 2~30대 남성 층이 메인 타겟이라고 생각했는데 다른 층에서 더 반응이 좋을 것 같다. 느긋하게 하는 분들이 하면 더 재미있지 않을까 싶다. 처음에는 하우징도 고민했는데 지금은 하우징 대신 스토리를 메인으로 잡았다. 엔딩을 보면 숨겨진 요소가 있고, 다시 시작하면 멀티 엔딩으로 진행된다. 


Q : '사파리배틀로얄'의 경우 김동건 본부장의 깜짝 공개로 세상에 공개됐다. 어떻게 진행된 것인가?
김동건 본부장이 아이디어가 있다길래 들어보고 A4 3장짜리 기획서를 본 뒤 만들어보자고 결정한 거다. 개발이 진행 중이긴 하지만 여러 가지 상황으로 인해 잠시 멈춘 상태다. 상황이 해결되고 결정이 내려지길 기다리고 있다. 

▲ 육식과 초식 동물의 생존 서바이벌 게임 '사파리 배틀로얄'


Q : 일반적인 생태계상 육식동물이 우세한 것 같은데, 밸런스는 어떻게 잡고 있나?
꼭 그렇지만은 않다. 밸런싱이 절묘하다. 실제로 게임에서는 채식동물이 생존에 유리할 가능성이 있다. 숲에 숨어서 풀만 먹으면 되기 때문이다. 


Q : 로그라이크는 국내에서는 잘 시도하지 않는 장르인데?
우리는 로그라이크보다는 난이도가 낮은 로그라이트(Rogue-Lite)를 지향하고 있고 '토쿤'도 그에 가깝다. 그런 장르가 소규모 팀이 개발하기에 좋은 장르다. 랜덤성도 있고 콘텐츠를 만드는 부담이 적다. 대신 다양한 무기와 장비, 아이템이 필요하는 등 다양성의 과제를 안고 있다. 


Q : 모바일 이외에 다른 플랫폼을 염두에 두고 있나? 그리고 향후 목표는?
모바일이 접근성이 좋기 때문에 메인으로 잡고 있는데, 닌텐도 스위치로도 해보고 싶다. 콘솔 게임 개발은 이미 해봤기 때문에 개발자의 열망 같은 건 없다. 오히려 현실적인 판매망이나 퍼스트파티 타이틀과의 경쟁이 더 이슈인데 최근 온라인 판매가 콘솔에서도 많이 되고 있어서 온라인 게임에 익숙한 한국 개발사에게도 큰 기회가 있다고 본다.

요즘 스팀 게임은 경쟁이 너무 심해서 주목을 못 받는다. 웬만하면 반응을 얻기 힘들고 다운로드 500회를 넘기기 힘든 그것이 현실이다. 요즘 해외 게임도 한국에 직접 서비스를 하는 만큼 더 어렵다.

스위치는 인디게임이 많이 나오고 이것이 장르화 된듯 싶다. 우리는 인디를 추구하는 회사는 아니고 도전을 계속하지만 인디로 남는다기 보다 포텐셜이 터질 수 있는 것에 도전하고 싶다. 국내에서 '배틀그라운드'의 성공을 예상하지 못했고, ’라그나로크 온라인’ 같은 한국 게임이 전 세계에서 사랑받을 것이라고 예상하지 못했다. 그래서 게임 산업이 재미있다. 다른 분야는 큰 투자나 해외 자본이 아닌 이상 그런 글로벌 흥행이 힘든데 게임은 가능하기 때문이다. 

물론 새로운 도전을 하려면 자본이 많이 필요하다. 우리도 투자를 받더라도 사랑받았을 때 성장할 수 있는 카테고리를 해야 가능하다. 전에 '팡야'로 그런 경험을 했고, '프로야구매니저'에서 열렬한 팬은 열렬한 매출을 내주는 걸 경험했다. 그리고 그 팬심은 조심하지 않으면 역풍으로 돌아온다는 것도 경험했다. 

앞으로는 지금 어린 친구들의 게임 트렌드를 잡아서 만드는 회사가 잘 될 것이다. 여기에 더해 멀티플레이와 샌드박스 등 서로 맞닿을 수 있는 요소를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우리도 그렇게 되기 위해 노력할 것이다.

박상범 기자  ytterbia@gamev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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