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의 질병분류 코드가 사회적 이슈다. 게임을 중독물질로 볼 수 있냐는 논의를 넘어, 중독물질로 규정하고 환자를 진단하는 기준이 발생하기 때문이다. 세계 각국의 게임 업체 및 협회는 저마다의 논리로 반박에 나섰다. 게임과몰입에 따른 불필요한 정책과 규제가 부여된 한국에서도 반대의 목소리가 높다.

업계의 뜨거운 감자를 더욱 상세하기 알아보기 위해 한국게임전문미디어협회(KGMA, 회장 이택수)와 한국게임전문기자클럽(KGRC)은 17일 서울 강남구 스타트업 얼라이언스에서 게임의 질병분류가 어떤 과정에서 진행됐고, 어떤 영향을 줄지를 배우기 위한 전문가 강연회를 열었다.

이날 강사로서 건국대학교 의과대학 정신과학교실 하지현 교수(정신건강의학 전문의)가 연단에 올랐다. 그는 정신과 전문으로 '그렇다면 정상입니다' '대한민국 마음 보고서' 등 다양한 저서를 집필했으며, 게임과 관련된 현상을 오랫동안 연구해온 전문가다.

강연회는 ‘인터넷 중독(인터넷 게임 장애)은 존재하는가?’를 주제로 발표가 진행된 뒤, KGRC 소속 기자와 청중의 질문에 전문의로서의 경험과 개인의 생각을 바탕으로 한 답을 듣는 순서로 진행됐다.

하 전문의는 강연에 앞서 “90년대부터 게임과몰입에 대한 연구를 진행하면서 많은 사람을 만났다. 과거에는 초등학생의 상황을 고민하는 학부모가 많았지만, 지금은 상담하는 연령층이 올랐다”며 화두를 던졌다. 답은 간단했다. 게임에 대한 이해도가 높은 연령층이 학부모로 세대교체가 됐기 때문이다.

◆ 게임에 대한 이해도로 ‘게임과몰입’ 기준 달라져

초등학생 학부모는 약 30~40대에 집중돼 있다. 이 세대는 패미콤과 MSX, 8비트 PC로 게임을 즐긴 세대다. 자신의 성장과정을 비추어 보면 아이들의 성장과 게임 이용이 정상이기 때문에 특별한 문제를 삼지 않는 것. 따라서 게임을 즐기는 행태와 문화를 알지 못하는 고연령 층 학부모의 상담비율이 자연히 높아졌다는 게 그의 경험담이다.

본격적인 발표에서 하 전문의는 통계에 대한 오류를 먼저 집었다. 여성가족부와 보건복지부 등 국가기관 8개 기관이 집계한 통계를 일상생활에 대입할 수 없다는 점이다. 그는 “통계를 실생활에 대입하면 동네에 몇몇 정도는 게임과몰입에 따른 문제를 안고 있고, 이를 볼 수 있어야 한다. 그런데 이런 사람을 찾기는 쉽지 않다”라고 역설했다.

통계 문제의 질문도 다분히 의도적이라고 했다. 청소년과 성인, 고령층용 자기보고 10개 문항이 다분히 의도된 결과를 가지고 작성됐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서는 “스마트폰을 처음 구매하면 신기하다. 여러 앱을 깔고 가지고 논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관심이 멀어진다. 2~3달 정도면 흥미가 떨어질 수밖에 없다”라며 “이런 사례로 알 수 있듯 중독에 대한 자가보고는 신뢰도가 매우 떨어진다. 문제가 있는 사람은 문제가 있다고 말하지 않는다. 일반적인 사항은 이런 항목을 볼 때 자신의 문제에 막연한 불안감을 가지게 되고, 설문결과에 반영된다. 이런 상황과 문제를 고민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간단한 예시가 이어졌다. 알콜의존증(중독)에 대한 경우 증상이 보이지만 진단은 할 수 없다고 한다. 그럼에도 게임은 의존증과 과몰입, 심지어 중독물질의 프레임 속에서 성급한 통계가 나오고 있는 실정이다.

◆ DSM과 ICD-11 질병분류, 어떤 의미인가

이어 게임산업계를 강타한 DSM5와 ICD-11(제 11차 국제질병분류)에 대한 개념 설명이 이어졌다. 먼저 DSM은 금단증상이 분명한 물질에 대한 진단과 분류 기준이며, 행위는 원칙적으로 분류 대상이 아니라고 했다. 단, 도박과 같은 정신적 의존과 충동이 충분한 자료와 사회적 합의가 이루어져 DSM5 섹션3에 편입하게 됐으며, 현상이 비슷한 게임이 언급됐다고 설명했다.

이 중 섹션3는 질병이 아니며 주의가 필요한 새로운 현상 항목이 분류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올림픽으로 치면 시범종목이다. 장기적인 관심과 연구가 필요한 종목이다. 하지만 한국에서는 이를 중독물질로서 규정된 것처럼 확대 해석하고 실질적인 정책과 사회 분위기를 이끌고 있는 실정이다.

또, 섹션3 편입에 포함된 연구는 대부분의 사례가 아시아 지역, 한국과 중국, 대만에서 나왔다. 앞서 나온 것처럼 조사 방법과 사례의 신뢰도가 낮다는 점이 다시 강조됐다. 또, 많은 예시로 꼽히는 약물의 의한 뇌의 변화와 게임에 의한 변화가 같다는 점도 미국에서 연구된 사랑 행위에 따른 뇌의 변화와 유사하다고 했다.

ICD-11 편입은 DSM5보다 파급력이 크다. 진단 분류와 진단명으로 질병과 환자를 분류할 수 있게 됐기 때문이다. 설명에 따르면 ICD-11에 편입되기 위해서는 최소 12개월 이상 여러 영역의 기능에 심각한 손상이 있어야 한다. 여기서 ‘심각함’의 기준은 아직 정해지지 않았으며 하 교수는 퇴사, 등교거부 등 일상적인 사회생활이 불가능한 상황을 기준으로 봐야한다고 했다. 이어 경험에 따르면 지금까지 상담과 진단을 진행한 사람 중 30% 정도에 그치는 정도며, 다른 정신질환에 따른 경우가 아니라면 사례는 더 적어지는 수준이다.

그는 “5년전 아시아에 집중됐던 게임과몰입이 여러 지역에서 보고되기 시작하면서 ICD-11에 포함되는 논의가 시작된 이유”라며 “단, 진단과 치료를 위한 관심이 필요하다는 것이지 환자를 만들어내기 위한 조치가 아니라는 점을 분명해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 게임 질병분류, 기존 현상과 얽혀 진행

일반적으로 하나의 진단 항목과 진단명이 생기기 위해서는 사례발견(Case reports)-사례누적(Case series)-증후군(Syndrome)-진단(A disorder)의 과정을 거치며 십수년의 연구와 보편적인 현상이 증명돼야 한다. 하지만 게임과몰입의 경우는 여러 단계를 건너뛰고 진단부터 생겼으며, 정설로 받아들여지고 있는 실정이다.

그는 “대부분의 연구가 설문조사를 중심으로 진행된다. 그런데 이 설문이 연구와 상황의 어떤 특징을 설명하는지 알 수 없다”라며 “강박증과 우울증, 도박에 대한 연구를 게임과 연관지은 것이 지금의 상황”이라고 했다.

이를 뒷받침하기 위해 하 교수가 지난 2006년 9월부터 2013년까지 임상결과를 공개했다. 약 87명(남성 77명, 여성 10명)의 상담자는 14세에서 28세까지 분포돼 있으며, 평균적인 게임 시간은 약 4시간에서 13시간(하루 평균) 정도로 편차가 컸다. 이때는 MMORPG와 FPS를 즐기는 사람들이 주류였다. 그는 지금은 MOBA(혹은 AOS)와 같이 인기 장르의 변화로 지금의 현상과는 차이가 있을 수 있음을 언급했다.

그는 “상담한 사람들은 게임을 하면 기분이 좋고 자존감이 있음을 느꼈다. 이 중 죄책감이나 자존감 상승 등에 무감각해진 사람은 게임에 중독됐다고 할 수 있다”라며 “학업에 문제가 있거나, 회사생활에서 사직이 강제되는 등 사회생활에 문제가 될 정도의 행위가 6개월 정도 지속되고, 스스로 통제가 안 된다면 심각하다고 볼 수 있다”고 설명했다.

◆ 게임의 부정적 영향만 보는 학계

그는 게임의 부정적 연구만 집중하는 사회분위기도 문제로 지적했다. 실제로 국내 논문 중 게임의 부정적 영향을 조명한 연구는 약 2,900건이 등록돼 있다. 반면 게임을 하면서 얻는 순기능에 대한 연구는 사례를 찾기 어려운 상황이다. 이는 게임을 통해 인지기능과 체력적 상황, 사회적 관계 등 여러 문제가 개선된 사례가 보고되는 것과는 확연히 다른 모습이다.

그는 “게임이 없었다면 더 심각한 사회문제들이 문제가 됐을 것이다. 어떤 측면에서는 게임의 순기능도 사회에 도움이 된다는 생각을 할 필요가 있다”라며 “향후 ICD-11로 인해 게임에 대한 인식이 더 나빠질 것이라고 쉽게 예상할 수 있다. 하지만 ICD-11의 기준은 장기적이고 심각한 것에 대한 것들이지, 1~2시간의 게임을 하는 사람들을 환자로 만들기 위한 것이 아님을 널리 알려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게임에 중독성이 있는가를 먼저 생각해봐야 한다. 안타까운 점은 게임을 설계하고 만들어 가는 과정이 중독성을 높이는 것과 닮았다는 것인데, 이런 부분에 대한 문제의식과 이를 해결하기 위한 업계의 노력을 적극적으로 알릴 필요가 있다”라고 덧붙였다.

이어 게임업체가 반대 근거로 제시하는 기능성 게임 대신 2,900개의 연구 논문에 반박하기 위한 업계의 노력을 적극적으로 노출하는 것이 게임질병 시대의 해결책이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특히, 수익에 집중하는 게임업체가 먼저 변화하지 않으면, 업계가 우려하는 상황이 계속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강사 약력
-서울대학교 대학원 박사
-서울대학교 의학 학사
-건국대학교병원 신경정신과 의사
-건국대학교 의과대학 정신과학교실 교수
-한국정신신체의학회 학술이사
-한국정신분석학회 편집위원, 기획이사
-캐나다 토론토 정신분석연구소 연구원
-용인정신병원 정신의학연구소 연구원
-서울대학교병원 신경정신과 전임의
-서울대학교병원 신경정신과 전공의
-'그렇다면 정상입니다' '대한민국 마음 보고서' '지금 독립하는 중입니다' '도시심리학' '청소년을 위한 정신 의학 에세이' 등 20여권

서삼광 기자  seosk@gamevu.co.kr

<저작권자 © 게임뷰,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