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 PC 패키지와 콘솔 게임 불모지에 속했다. 하지만 ‘배틀그라운드’의 등장으로 새로운 시장에 대한 관심이 증가했고, 자연스럽게 다양한 장르의 신작 개발이 추진됐다. 게임이 보편적인 취미가 되면서 다양성을 추구하는 유저가 늘어난 것도 이유로 꼽힌다. 덕분에 인디게임의 영역으로 머물렀던 국산 PC 패키지와 콘솔게임 타이틀이 속속 준비되고 있다. 네오위즈가 대작(AAA급) 규모로 준비 중인 ‘P의 거짓(Lies of P, 이하 LoP)’도 국내외 게이머의 관심작으로 부상했다.

LoP는 다양한 부분에서 기존 게임과 다른 타이틀이다. 플랫폼과 개발 규모, 장르, 타깃 유저 등 대부분의 목표가 온라인게임과 다르다. 당연히 기획부터 개발까지 다른 방식의 접근법이 필요하다. 새로운 탐험을 추진하는 원동력은 언제나 도전 정신이다. LoP 프로젝트를 지휘하는 네오위즈 라운드8스튜디오 최지원 디렉터 역시 도전이란 키워드에 고개를 끄덕였다.

■ 미지의 영역, 싱글플레이 소울라이크 장르에 도전

네오위즈 스튜디오8 최지원 디렉터 (인터뷰는 방역수칙을 준수해 진행했으며, 사진 촬영을 할 때만 잠시 마스크를 벗었습니다)

“소울라이크 장르는 글로벌 무대에서 이미 가능성을 인정받았습니다. 하지만 장르를 개척한 프롬소프트웨어의 게임 외에는 이렇다 할 성공작이 없습니다. 그래서 LoP를 처음 발표했을 때 온라인게임 만들던 한국 개발자가 할 수 있겠냐란 말도 들었습니다. 이 말을 듣고 오히려 도전하고 싶다는 욕심이 생겼어요. 제대로 한번 만들어 보고 싶은 욕망이 강해졌고, 결국 도전을 선택했습니다.”

최 디렉터는 액션으로 중심을 잡은 다양한 프로젝트에 참여한 개발자다. ‘다크블러드 온라인’, ‘애스커 온라인’을 거쳐 ‘로스트아크’ 전투 시스템을 개발한 것으로 유명하다. 그가 가장 현대적인 액션 장르인 소울라이크를 맡게 된 것도 어찌 보면 자연스러운 흐름일 수 있다. 그런데 프로젝트에 합류하는 과정은 평범하지 않았다. 네오위즈가 먼저 소울라이크 장르 신작 개발에 합류할 것을 제안했고, 많은 고민 끝에 도전을 선택했다고 한다.

그가 언급한 가능성은 장르적 완성도와 상업적 성과로 보인다. 장르의 틀을 잡은 ‘다크소울’ 시리즈는 총 3개의 게임이 약 2,700만장(2020년 5월 기준) 이상의 판매고를 올렸다. 판매량 측면에서는 상업적 가치를 인정받은 장르라고 부르기 부족함이 없다. 하지만 높은 난이도와 복잡한 레벨 디자인, 어두운 스토리텔링 등 보편적으로 선호하는 장르라고 평가하기는 애매한 부분이 존재한다. 개발자로서 이런 난해한 장르에 도전한다는 것은 분명 큰 결심이 필요했을 것이다.

그는 “프로젝트 제안을 받았을 때는 심정으로는 흔쾌하게 합류하고 싶었다. 하지만 좋은 결과를 만들어야 한다는 부담감이 더 커서 망설이기도 했다”라며 “프로젝트를 구상하다 피노키오를 더해보자는 영감을 떠올렸다. 깊이 생각한 끝에 승산이 있는 프로젝트라고 판단해서 제안을 받아들였다”라고 말했다.

■ 개발 기간 단축 비결은 확실한 목표 설정

인터뷰를 진행한 1월 기준으로 LoP 프로젝트는 5부 능선을 넘어섰다. 여기까지 도달하는데 약 2년의 시간이 투입됐다. 초기 기획과 연구개발(R&D)에 1년, 본격적인 개발에 1년이 걸렸다고 한다. 비슷한 규모의 프로젝트가 적어도 3년은 개발된다는 점에서 놀라운 속도다.

그는 “확실한 목표와 분량을 결정할 수 있다면 개발 속도가 빨라진다”라며 “명확한 목표를 설정하는 것은 개발자와 디렉터에게 가장 어려운 일이지만, 가장 효과적인 수단이기도 하다”라고 말했다. 여기에 네오위즈 차원에서 전폭적인 지원과 주변의 응원도 큰 도움이 됐다고 덧붙였다.

멀티플레이 시스템이 없는 것도 하나의 이유일 순 있다. 일반적인 소울라이크 장르에는 간접적인 협동 플레이나 대전(PvP)가 도입된다. 반면, LoP는 이런 요소들을 배제하고, 대신 싱글플레이 본연의 재미를 갈고닦는데 투입하는 것으로 방향성을 잡았다. 첫 프로젝트에서 발생하는 다양한 위협과 예측할 수 없는 문제를 완전히 제외하겠다는 뜻도 반영됐다.

그렇다면 최근 외산 대작게임처럼 플레이 시간이 짧은 것은 아닐까. 이를 묻는 질문에는 손사래를 쳤다. "평균적인 실력을 가진 게이머가 엔딩을 보는데 약 30시간, 시행착오를 반복한다면 40시간까지도 늘어날 수 있다"는 답변이 돌아왔다. 기존 게임과 비교할 때 모자람이 없는 볼륨으로 채워진다는 뜻이다.

이어 게임디렉터로서의 역할을 명확한 목표 설정과 설득이라고 재차 강조했다. 또, 팀원들이 같은 목표를 바라보게 만드는 것을 중요한 포인트로 짚었다. 자신의 역할을 설득하고 조율하는 것이라고 했을 정도다.

추가로 팀원이 제시한 모든 의견을 긍정적으로 검토할 것을 권장했다. 프로젝트의 관심과 적극성은 플러스 요인이며, 좋은 결과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는 분석이다. 하지만 의견을 반영할 때 목표에 부합하는지를 검토하고, 어긋나는 부분을 명확하게 설득해야 개발과정에서 발생하는 의견 충돌을 줄일 수 있다고 조언했다.

목표와 방향성만 확실하다고 개발이 빨라지는 것은 아니다. 개발 속도가 빠르다고 자신한 최 디렉터이지만, 과정은 순탄하지 않았다고 속내를 밝혔다. 가장 큰 부분은 역시 개발 노하우의 부족이다. 개발 노하우가 적은 싱글플레이 게임인데다, 플랫폼까지 다양하다 보니 문제가 발생하는 이유와 폭이 달랐다. 여기에 문제 해결을 위한 정보를 국내에서 공유되는 사례 자체가 적다고 한다.

그는 “개발자가 개인적으로 공유하는 부분은 있지만, 노하우를 공유하는 부분에서 아직 폐쇄적이란 느낌이 강하다”라며 “그나마 다행인 점은 네오위즈 자체적인 해법을 확보했다는 점이다. 그래픽 품질을 결정하고, 최적화하는 부분 등 경험이 반드시 필요한 부분에서 도움을 받고 있다”라고 말했다.

■ 피노키오와 벨에포크, 문턱을 낮추기 위한 선택이자 정체성

확실한 목표를 세우기 위해서는 검토해야 할 부분이 많다. LoP 프로젝트는 장르적인 특징을 파악해야 한다는 점이 추가된다. 소울라이크가 하나의 장르로 정착했음에도, 명확한 특징을 정의하기에는 어려운 부분이 많다. 그렇다면 최 디렉터와 개발팀이 분석한 소울라이크의 특징은 무엇일까.

“게임으로서 소울라이크는 뇌가 활발해지는 액션게임이라고 생각합니다. 간단한 액션이 단순한 과정과 결과로 이어지는 것이 특징입니다. 하지만 유저의 선택에 따른 결과는 극단적으로 갈립니다. 단순히 어려운 게임이 아닌, 경험이나 판단이 중요한 장르라고 느껴지는 이유인 것 같아요. 소울라이크는 기본기에 더욱 충실해야 하는 장르, LoP가 그런 게임이 되도록 만드는 것이 우리의 목표입니다.”

이어 “소울라이크 게임은 분명히 대중적인 장르다. 하지만 엔딩까지 본 유저가 적은 장르이기도 하다. 소울라이크 장르를 알지만, 충분히 접하지 못한 유저가 즐길 수 있게 만들려면 플러스알파 요소가 필요했다”라고 첨언했다.

이런 고민이 담긴 LoP의 영상은 공개와 동시에 화제를 불러일으켰다. 가장 먼저 주목받은 점은 독특한 콘셉트다. 해외 반응을 살펴보면 고전 동화 피노키오의 모험을 모티브, 벨에포크 시대의 문화 양식과 소울라이크 특유의 어두운 분위기를 결합한 점이 신선하다는 반응이 대다수를 차지한다.

익숙하면서도 다른 비주얼도 좋은 평가를 받았다. 이런 부분에는 평소 여행을 즐기는 최 디렉터의 취미가 녹아들었다. 오래된 성당과 여행지에서 풍기는 독특한 느낌을 LoP에 녹여 내는데 심혈을 기울였다. 시각적 표현의 친숙함이 플러스알파 요소가 된 셈이다.

시각적 표현에만 적용되는 것은 아니다. 피노키오가 인형이란 점에 주목해, 다양한 장치를 쓴다는 특징을 더했다. 또, 원작 동화의 풍부한 캐릭터를 비튼 스토리 역시 즐길 거리 중에 하나다. 그가 항상 지참하는 인형탈도 게임의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는 검은 토끼단을 알리기 위함이라며 애착을 드러냈다.
 

■ 게이머를 향한 존중을 담은 ‘P의 거짓’

많은 고민과 시행착오, 도전이 담긴 LoP는 완성까지 약 1년의 시간이 더 투입될 예정이다. 남은 기간은 부족한 부분을 보완하고 콘텐츠의 볼륨을 채우는 데 쓴다. 그래픽적 표현과 전반적인 플레이 경험(UX)에 완성도를 더하고, 세밀한 부분에 데코레이션과 디테일을 채우는 작업을 병행한다. 지금까지가 뼈대를 세웠다면, 이제부터 본격적으로 살을 붙이는 작업이 진행된다.

카운트다운이 시작된 개발팀은 부담보다 오히려 자신감을 얻은 상황이다. 지난해 공개한 시나리오-플레이 트레일러 영상 두 편이 환영받은 덕이다. 이 시점을 전후로 개발팀 내부에서 할 수 있다는 분위기가 조성됐다. 도전이 열정을 키웠고, 열정이 평가를 받으면서 자신감을 키우는 기폭제가 된 셈이다. 최 디렉터는 반전된 분위기를 이어가 LoP를 유저가 도전할 수 있는 게임으로 완성하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그는 “소울라이크 게임을 즐기는 유저를 항상 존중(리스펙)해 왔다. 게임의 목표와 자신의 취향을 자신의 취향과 콘셉트를 결정하고, 이를 지키며 어려운 게임에 도전하는 모습이 아름답다고 생각한다. 2023년 선보일 LoP를 도전의 목표가 되는 게임으로 완성해 나가겠다”라고 했다.

서삼광 기자  seosk@gamev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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