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6월 3일부터 7일까지 대만 타이페이에서 열린 컴퓨텍스 2024에서 가장 핫한 주제는 바로 인공지능(AI)이었다. 최근 생성형 AI를 중심으로 강하게 불고 있는 혁신적 흐름을 반영한 현상이다. 현장을 취재하던 필자가 놀란 건, 이 흐름이 인공지능 관련 글로벌 회사 몇몇이 아니라 ICT 산업계 전반부로 빠르게 확장되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행사장에는 그래픽 카드, 운영체제, 앱 같은 직접 관련된 분야는 물론이고, 모니터나 시스템 관리 같은 분야까지 인공지능을 적용한 서비스 제품이 다투어 관람객을 눈을 이끌려 애쓰고 있었다.

물론 그 가운데는 굳이 인공지능이라 부르지 않아도 될 알고리즘이나 빅데이터 수준의 솔루션을 포장시킨 것도 있었지만, 최근 대세가 무엇인지를 잘 알고 흐름에 동참하려 애쓰는 모습인만큼 인정할 여지가 있었다.

이런 흐름 중심에서 모두를 이끌어가는 존재는 핵심 칩 제조사인 엔비디아다. 키워드 몇 가지로 그림을 그려주고 음악을 작곡하고, 프로그래밍을 해주는 생성형 AI를 제대로 구동하려면 이 회사가 만든 AI(인공지능) 가속기가 필수적이다. 거의 대체재가 없는 AI 서비스의 필수 부품이라고 불린다.

엔비디아 젠슨 황(출처=엔비디아)

따라서 시장에서는 엔비디아의 주가가 폭등하고 협력하는 기업들의 가치도 덩달아 오르고 있다. 엔비디아 칩에 적합한 미세공정을 책임지는 대만 TSMC, 고대역폭 메모리(HBM)를 납품하는 SK하이닉스의 주가 역시 크게 올랐다. 삼성전자는 얼마전 HBM 납품 테스트에 떨어졌다는 뉴스가 보도되자 주가가 크게 떨어졌을 정도다.

하지만 자유경쟁시장에서 이런 한 기업의 독주를 그냥 내버려둘 리 없다. 마치 스마트폰 혁명처럼 인공지능이 전세계 시장을 개편하며 천문학적 이익을 가져올 것으로 전망되자, 관련 분야의 기술을 가진 기업이 총력을 다해 이 시장에 뛰어들 준비를 하고 있다. 이들은 현재 단단한 입지를 차지한 엔비디아를 견제하기 위해, 상호 연대를 통해 '반엔비디아 전선'을 형성하려 하고 있다.

비교적 어려운 이야기 같아서 '삼국지식 비유'를 섞어 보겠다. 재미있게도 요즘 MZ세대에서 유행하는 비유다. 얼마전 중국 청두에서 열린 '리그오브레전드'(LOL) 국제대회인 MSI에서 한국팀인 젠지가 중국팀인 BLG를 꺾고 7년 만에 한국팀이 대회 우승을 차지했다. 그러자 이것을 두고 관련 커뮤니티에서는 '촉나라가 7차례만에 북벌에 성공했다'고 비유하기도 했다.

엔비디아가 인공지능 가속기 시장에서 패권을 차지하고 있는 이유는 크게 두 가지다. 우선 게임을 위한 그래픽 가속기 시장에서 승자가 되면서 다져진 기술력으로 인한 최고 성능이다. 이것은 말하자면 조조가 만든 위나라가 수도인 낙양과 장안을 차지한 것에 비유할 수 있다. 내전을 치르는 나라에서 거의 대부분은 수도를 차지한 나라가 최종 승리한다.

다른 하나는 자사 칩에 특화된 인공지능 가속 규격인 CUDA(쿠다)의 존재다. 엔비디아는 아직 인공지능 시장이 본격적으로 만들어지기 전부터, 이 쿠다를 적극적으로 관련 연구자에게 보급하고 지원했다. 

때문에 현재 엔비디아의 AI 가속기 점유율은 80%을 넘었다. 고성능이 필요한 거의 모든 시장을 차지하고 있다. 경쟁 업체가 저렴하거나 전력대비 성능이 좋은 인공지능 가속기를 만들더라도, 쿠다를 쓰지 못하기에 주류 시장에서 구입하지 않는다. 

이것은 조조가 한왕실의 황제를 데리고 그 이름으로 천하를 통치하는 것과 비슷하다. 설령 실질적으로 힘이 있는 경쟁자라도, 쿠다라는 황제의 말을 거스를 수 없기 때문에 저절로 그 영향력에 편입될 수 밖에 없다.

물론 이에 대항하는 경쟁업체의 움직임도 만만치 않다. 한때 찬란한 영광을 누렸다가 지금은 살짝 밀려난 인텔이, 마치 한왕실 후손인 유비가 세운 촉나라처럼 재기를 위해 뛰고 있다. 인텔은 대만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 기업 TSMC와 협력해 차세대 AI 프로세서 생산에 나섰다. 

인텔 팻 겔싱어(출처=인텔)

팻 겔싱어 인텔 CEO는 올해 하반기 출시할 AI 프로세서 ‘루나 레이크’를 소개했다. 이 칩은 시스템온칩(SoC) 전력을 전작 대비 최대 40% 줄이고 AI 컴퓨팅 성능은 3배 이상 높였다. 인텔  AI 가속기 '가우디 2'는 엔비디아 GPU 가격의 3분의 1, '가우디 3'는 3분의 2 수준이다. 뛰어난 가성비를 앞세워 엔비디아의 확실한 경쟁자가 되겠다는 구상이다. 

그래픽 가속기 시장에서 엔비디아와 경쟁자였던 AMD는 남쪽에서 야망을 뻗치는 오나라처럼 포효하고 있다. AMD 리사 수 CEO는 올 4분기 차세대 AI 가속기(인스팅트 MI325X) 출시 계획을 지난 3일 밝혔다. 자사 제품이 엔비디아 H200 대비 용량은 2배, 메모리 대역폭은 1.3배, 모델 사이즈는 2배 향상된다는 설명이다. 

리사 수 CEO는 특히 이 발표 자리에서 MS, HP, 레노버 같은 파트너사들과 함께 한다는 점을 강조하며 엔비디아를 견제하는 세력이 크다는 걸 알렸다. 이런 주요 빅테크 기업들도 '반기'를 드는 이유는 간단하다. 인공지능 서버 구축을 위해 절대적으로 엔비디아 한 기업에게 의존할 수 없기 때문이다.

AMD 리사 수(출처=AMD)

엔비디아의 AI 가속기는 기본 5,000만원이 넘는데다, 주문하더라도 1년 이상 기다려야 하는 품귀 현상을 보이고 있다. 전용 소프트웨어 쿠다와 전용 통신 규격 NV링크를 통해서만 구동되는 기술 장벽 때문에, 경쟁사 칩을 섞거나 대체해서 바꿔서 쓸 수도 없다.

미국의 구글, MS, 메타 같은 기업들은 울트라 가속기 링크(Ultra Accelerator Link·UA링크) 프로모터 그룹이라는 협력 조직을 결성하고, NV링크에 대항하는 새로운 기술 표준 만들기에 나섰다. 황제를 내세운 위나라에 대항해 촉나라와 오나라 역시 모두 독자적으로 황제에 오르며 제대로 주도권을 찾아 오려는 시도다.

삼국지와 약간 다른 흥미로운 점은, 이 가운데 한국의 삼성전자도 끼어 있다는 사실이다. 지난 2월 27일, 리사 수 CEO는 삼성전자와 차세대 메모리 반도체 분야에서 긴밀하게 협력하고 있다고 밝혔다. 구체적으로 양사는 정보처리 시 전력 소비를 85퍼센트 줄이는 프로세싱-인-메모리(PIM) 기술 개발을 협업하고 있다.

현행 엔비디아 칩의 약점인 과다한 전력소비와 발열이란 약점을 찌르기 위한 전략의 일환이다. 차세대 혁신 기술로 꼽히는 인공지능 가속기 시장을 둘러싼 이런 삼국지의 결말이 과연 어떻게 될 지 자뭇 궁금하다.

안병도 기자  press@gamev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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