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편까지 출시된 스퀘어에닉스의 ‘파이널판타지’(이하 FF)는 지금까지 수많은 캐릭터를 만들어냈으며 아직까지도 사랑받고 있는 캐릭터도 다수 존재한다. 하지만 언젠가 콘텐츠가 소모되면 결국 게임과 캐릭터 역시 잊혀지기 마련일 것이다.

다른 게임사도 마찬가지지만 스퀘어에닉스도 잊혀져 가는 IP를 되살리기 위해 많은 노력을 하고 있다. 플랫폼을 옮기며 재출시하거나 다른 게임에 찬조 출연도 하고 좀더 모험적인 방법으로 리메이크를 하기도 한다.

이런저런 IP 살리기 일환 중에 지난 2011년 ‘FF’ 20주년을 기념해 PSP 용으로 출시된 ‘디시디아 파이널판타지’라는 독특한 대전 게임이 있었다. 일반적인 대전 게임과는 전혀 다른 스타일로 호불호가 갈리긴 했지만, 성공적인 실험이었다는 평을 남겼다.

대중화까지는 이르지 못해서인지 그 이후로는 차기작이 나오지 않았으나, 2015년 아케이드 버전으로 새롭게 등장한다. 이를 PS4 버전으로 이식하여 출시된 버전이 ‘디시디아 파이널판타지 NT’(이하 NT)다.

■ 아케이드 게임 스타일의 완벽한 이식

전작을 잘 모르거나, 알더라도 콘솔 게임의 룰을 생각하고 ‘NT’를 시작했다면 대부분의 유저는 “무늬는 분명 ‘FF’이고, 대전 게임인데 뭘 해야 할지 모르겠네”라는 상태에 이르게 될 것이다. 튜토리얼을 마쳤다면 일반적으로 아케이드 혹은 스토리 모드를 먼저 깨고 온라인으로 넘어가는 패턴을 생각할 수 있는데 ‘NT’는 그 패턴과 많이 다르기 때문이다.

스토리 모드를 먼저 보자면 특정 포인트로 해금을 하는 방식인데 이 포인트는 오프라인-온라인 대전을 통해서만 얻을 수 있다. 그러면 보통 오프라인으로 진행되는 아케이드 모드를 생각할 수도 있는데, 스토리 모드와 마찬가지로 유저를 당황하게 한다.

일반적인 대전 게임들처럼 캐릭터를 차례차례 쓰러뜨리고, 최종 보스와 싸우는 패턴이 아닌 그냥 CPU과의 대전 모드에 가깝다. 좋게 말해서 아케이드 모드를 따로 만들지 않는 요즘 트렌드를 충실히 따르고 있다.

6번 연속으로 싸우는 러쉬 배틀과 코어 배틀이라는 대전 방식이 유저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선택지다. 결국 튜토리얼 > 오프라인 대전으로 계속 싸우면서 시스템 파악하기 > 온라인 대전 > 스토리 모드 해금의 패턴으로 진행하면서 일단 싸워야 한다. 그런 면에서 튜토리얼에서 모그리가 등장해 ‘일단 싸우는 거다!’라는 말은 이 작품 전체를 관통하는 매우 중요한 한 마디다.

즉, ‘NT’는 콘솔 대전 게임으로서의 구성이 아닌 아케이드 게임장의 분위기와 스타일을 그대로 옮겨놓은 듯한 싱크로율을 보여준다. 대전 게임에서 중요한 밸런스, 비주얼, 손맛 등이 이미 검증됐으니 걱정 안 해도 된다는 장점 아닌 장점이 아닐까 싶다.

▲ 적절한 타이밍에 들어가는 HP 특수기

■ 쉬운데 어려운 대전 게임

‘NT’는 대전 게임들처럼 버튼 조작과 다양한 연속기로 상대를 쓰러뜨리는 방식이 아닌, 심리전과 타이밍을 기반으로 한 전략적 방식의 게임이다.

적에게 부여된 브레이브 숫자를 줄여 브레이크 상태(방어불능)로 만들고 HP라는 특수기를 통해 대미지를 가해 전투 불능으로 만든다는 룰만 숙지하면 ‘NT’의 전투 시스템 중 절반을 이해했다고 봐도 무방하다.

여기에 캐릭터마다 부여된 다양한 스킬, 회피기, 반사기, 방어기, 대쉬, 소환수 소환 등을 적절히 섞어 플레이하면, 대전 게임 못지 않은 손맛과 재미를 느낄 수 있다.

이처럼 구현하기 쉬운 조작과 룰로 대전에 임하면 과하다 싶을 정도로 압도적인 비주얼을 보여주는데, 정작 플레이는 하면 할 수록 어렵게 느껴진다. 전작을 해본 사람이라면 상관없지만 처음 접하는 유저들은 스테이지 한 판이 끝날 때까지 타게팅된 상대 캐릭터만 쫓아다니다가 버튼 몇 개 누르다 보니 끝나는 느낌을 받을 수 있다.

게다가 3 vs 3으로만 진행되는 방식으로 인해 6명의 캐릭터가 뒤엉켜 싸우는데, 좋게 말하면 이펙트의 장관, 나쁘게 말하면 난장판이 연출되어 ‘나는 누구? 여긴 어디?’와 같은 오묘한 기분이 느껴진다.

▲ 뭔가 굉장한데, 사실 내가 뭘 하고 있는지 모른다.

물론 캐릭터들이 모두 ‘FF’의 주-조연급 출연진이니 캐릭터 자체에 감정 이입은 쉽게 된다. 그런데 각 캐릭터의 오리지널 특성과 다른 캐릭터와의 상성 등을 파악하고 이를 실제 대전에서 활용하는 것은 기본 전투 시스템을 자유자재로 다루는 것 이상의 시간 투자를 필요로 한다.

‘내가 좋아했던 캐릭터였어!’ 라는 감성은 전투 시작 직전 캐릭터가 떠들기 전까지일 뿐, 결국엔 원거리, 근접, 탱킹 등의 스타일을 가진 하나의 전투 요원일 뿐이다. 

대전 격투와 같이 특정한 몇 개의 패턴을 연습해 언제든지 사용할 수 있다고 해서 대전이 재미있어지거나 손맛의 쾌감을 맛볼 수 있는 형태의 장르가 아니기에, 조작은 쉽지만 금방 재미를 느끼고 즐기기엔 어려운 대전 게임일 수 밖에 없다.

▲ 캐릭터에 대한 감정이입은 딱 여기까지다.

■ 태생이 RPG니까 대전도 RPG다

노가다는 ‘FF’뿐 아니라 대부분의 RPG에서 꼭 필요한 요소 중 하나다. 예전에는 하나의 목표를 위해 똑같은 장소에서 똑같은 몬스터를 계속 잡는 방법 밖에 없었지만, 이제는 다양한 퀘스트와 콘텐츠와 연계해 즐거운 노가다 플레이를 유도한다.

‘NT’는 태생이 RPG였음을 확인하듯, 여러가지 보상을 얻기 위해 장시간 플레이를 강요한다. 캐릭터 레벨 상승에 따른 보상, 본인 티어에 따른 보상, 길(게임머니)을 통한 상점 이용, 포인트를 통한 스토리 모드 해금과 랜덤 상자 오픈 등이 존재하여, 한 판 플레이 할 때마다 무언가 얻어가는 보상심리 자극은 충실하다.

단, 온라인 또는 오프라인 배틀을 통해서만이 가능하고, 강제적인 3 vs 3 배틀로 인해서 나만 잘한다고 되는 것도 아니기에 플래티넘 달성을 목표로 한다면 일반적인 RPG 이상의 플레이 시간과 함께 적당한 인내심과 배려심도 필요하다.

▲ 소환수 친구들도 처음부터 다 주진 않는다.

■ 초보자의 최대 진입 장벽! 3 vs 3 배틀

실전만한 훈련은 없다고는 하지만 ‘NT’에서의 3 vs 3 방식은 오히려 훈련과 플레이 의지를 꺾는 요소로 작용한다고 판단된다. 유일한 1 vs 1 대전은 튜토리얼인데, 고목나무처럼 서 있는 캐릭터를 상대로 실력을 키우기에는 한계가 명확하다.

CPU와 대전을 통해 브레이브(지상, 공중), 대쉬, HP기, EX스킬들의 활용법을 알고 실전에 적용하며 익혀가야 하는데, 3 vs 3 배틀에서는 이를 방해하는 요소가 너무 많다. 앞에 있는 적과 싸우다 보면 어느새 다른 적이 와서 협동 공격을 하거나, 소환수의 등장으로 화면이 어지럽게 돌아가는 등 기술의 확인과 체득이 만만치 않다.

오프라인 모드는 CPU의 인공지능이 떨어져도 본인의 실력으로 하드캐리가 가능하지만, 온라인에서의 3 vs 3은 전혀 다르다. 실력도 중요하지만 일단 전략과 소통이 전제가 되어야 하는데, 자신보다 낮은 티어의 팀을 만났다 하더라도 팀플레이가 되지 않으면 속수무책으로 당하기 쉽다. 초보자나 ‘FF’ 팬이 이 게임을 구매해서 재미있게 가지고 놀기에는 가장 중요한 메인 콘텐츠가 진입장벽이 되어 버린 형국이다.

물론 3 vs 3 배틀만의 장점은 분명 존재한다. 실력도 중요하지만 전략, 캐릭터 조합, 운, 스테이지 특성 등에 따라 무한에 가까운 승리 방정식을 유저가 만들어 갈 수 있다는 점은, 플레이 할 때마다 새로움을 선사할 수 있다.

특히 친구들이나 지인들과 함께하여 전략적으로 느끼는 승리의 맛은 AOS급 이상이라 본다. 대전게임 류에서 이런 재미를 느끼게 하기 위한 초보자를 위한 최소한의 장치가 1 vs 1 배틀이 아닌가 싶은데, 트레이닝 모드조차도 없는 부분은 진입 장벽을 통과하지 못할 유저는 버리겠다는 제작진의 의도가 몸소 느껴진다.

▲ 전략이 굉장히 중요한 코어배틀

■ 굳이 힘들여서 먹고 싶지 않은 맛있는 음식

‘NT’를 음식에 비유한다면, 맛있는 음식이고 맛있다는 것도 알고 있지만 막상 먹어보면 맛이 느껴지지 않는 부류가 아닐까 한다. 이미 전작이나 아케이드 게임을 경험한 유저라면 당연히 어떻게 먹을 줄도 알고 맛도 느낄 수 있겠지만, ‘FF’의 추억을 상기했거나 단순히 조금 다른 대전 게임을 연상했던 유저에게는 ‘NT’ 특유의 깊이 있는 맛을 느끼기까지 오랜 수행의 길이 수반되어야 한다.

반면 자신이 직접 플레이 하는 것이 아닌 대전 게임 특성상 고수들의 영상을 보면 감탄이 터져 나올 정도로 보는 재미가 있다. 나름 e스포츠도 겨냥해 아케이드에서 이루지 못한 유저 확산을 콘솔 유저를 통해 이루고 싶다는 개발사의 의도도 있었을 것이라 본다. 하지만 정작 신규 유저 확산을 위한 콘텐츠에는 소홀히 한 상태로 이식한 점은 큰 아쉬움으로 남는다.

▲ 꼭 소환해 보고 싶습니다. 시바~

박상범 기자  ytterbia@gamevu.co.kr

<저작권자 © 게임뷰,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