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의 에프엔타스틱(Fntastic)이 개발한 '더 데이 비포(The Day Before)'는 2021년 1월 개발 발표 이후 스팀에서 '가장 기대되는 게임'이었다. 개발 지연과 자산 유용 의혹으로 화제가 되기도 했으며, 지난 2023년 12월 8일에는 얼리 액세스 버전이 드디어 출시됐다.

그런데, 출시한 지 불과 4일 만에 에프엔타스틱은 경영난을 발표하면서 2024년 1월 22일 서비스 종료와 함께 서버도 문을 닫았다. 기대와 다른 엉망인 게임성에 구매자들은 분통을 터뜨렸다. 초기대작에서 한순간에 망작으로 추락한 '더 데이 비포'는 대체 무슨 일이 있었나.

■ '환상의 좀비 서바이벌' 지금까지를 되짚어보자

게임 소식에 관심이 많은 유저라면 '더 데이 비포'라는 작품에 대해서 한 번쯤 이름을 들어봤을 것이다. 2021년 1월 4일에 개발 소식이 최초 공개되면서 큰 화제를 불러 일으켰으며, 'MMO' 시스템을 탑재한 서바이벌 액션 게임으로 소개됐다.

발표 당시 공개된 영상은 엔비디아의 협력으로 레이 트레이싱과 같은 영상 기술을 아낌없이 사용했다. 2021년 1월 29일에는 IGN의 단독 기사로 게임 플레이 영상이 공개되면서 게임 커뮤니티의 분위기는 한층 더 고조됐다. 이후 2023년 11월로 출시일이 연기됐지만, 여전히 스팀에서 '가장 기대되는 게임' 1위를 지켰다.

그러나 '더 데이 비포'의 새로운 정보가 좀처럼 발표되지 않을 뿐 아니라 출시 연기가 거듭되자, 게임 커뮤니티와 인플루언서들은 우려의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그동안 공개된 몇 안 되는 아트워크와 게임 설정이 유비소프트의 '디비전'이나 너티 독의 '더 라스트 오브 어스' 시리즈를 모방한 것이란 의혹이 대두됐다. 이에 따라 "실제로 존재하지 않는 게임이다", "사기 행각에 휘말리지 말라"는 논조도 끓어올랐다.

게다가 2023년 1월에는 게임 타이틀의 상표권 분쟁으로 인해 스팀에서 게임 페이지가 삭제되기도 했다. 2021년 게임 발표 당시에는 사용 가능했던 '더 데이 비포'의 상표를 개인이 먼저 취득한 상황이었는데, 에프엔타스틱을 동정하는 목소리는 거의 없었다.

이런 우여곡절을 겪고 2023년 12월 8일 드디어 얼리 액세스 버전이 출시됐다. 하지만, 당초 발표됐던 'MMO'가 아닌, 미션을 수행하며 맵을 탈출하는 이른바 '익스트랙션' 기반의 협동형 슈팅 게임이었다. 게다가 근접전 요소의 부재와 적 AI의 조악함, 평범한 게임 시스템 및 성능 저하 등 여러 문제점이 지적되어 게임 매체로부터 일제히 비판받았다.

그토록 형편없는 게임성에도 불구하고 얼리 액세스 버전이 39.99달러에 판매된 것도 게이머들의 증오를 부추기는 한 요인이었다. 본인 역시 "현 단계에서는 구매하지 않겠다"고 판단했는데, 그 판단이 틀리지 않았다.

얼리 액세스 버전 출시 4일 후인 12월 12일에는 에프엔타스틱이 재정적으로 파산했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이어 1월 22일에는 서버도 중단되는 등 최악의 결말을 맞이했다. 참고로 환불을 요청하지 않은 유저의 라이브러리에서도 게임이 자동 삭제되어 반강제적으로 환불이 이루어지는 등 스팀 역사상 보기 드문 사태가 벌어졌다.

[그림] 큰 기대를 받았지만 '환상의 작품'이 되어버렸다. 미숙한 개발팀에 너무 큰 기대를 걸었던 것일까?

■ 에프엔타스틱과 마이토나의 시베리아 신디케이트

'더 데이 비포'를 개발한 에프엔타스틱은 혹한의 땅으로 알려진 시베리아의 야쿠츠크에서 2015년에 창업했다. 창업자는 에듀왈드 고토브체프(Eduard Gotovtsev)와 아이젠 고토브체프(Aisen Gotovtsev)라는 형제다. 지금까지 '더 와일드 에이트(The Wild Eight / 2019년), '프롭나이트(Propnight / 2021년) 등의 게임을 개발했으며, 지난 2021년에는 본사를 싱가포르로 옮겼다.

흥미로운 점은 '프롭나이트'와 '더 데이 비포'의 퍼블리셔인 마이토나(Mytona)와의 인연이다. 에듀왈드 고토프체프는 마이토나에서 선임 소프트웨어 엔지니어로 근무한 경력이 있다. 야쿠츠크에 설립된 마이토나는 모바일게임 퍼블리싱으로 성공을 거두었으나, 에프엔타스틱과 마찬가지로 2021년 러시아를 떠나 싱가포르를 거쳐 뉴질랜드의 오클랜드로 본사를 옮겼다.

[그림] 과거 영하 64.4도까지 내려간 적도 있다는 야쿠츠크에 기반을 둔 에프엔타스틱의 창업자, 에듀왈드 고토프체프(오른쪽)와 그의 동생 아이젠 고토프체프(왼쪽). 에프엔타스틱은 '환상적'이라는 뜻이다

에프엔타스틱이 경제적 이유로 폐업을 선언한 직후인 2023년 12월 15일, 싱가포르에 거주하는 야후 뉴스 영어판의 알로이시우스 로우(Aloysius Low) 편집자는 에프엔타스틱 본사를 방문했다. 등록된 주소는 상주 직원이 없는 공유 오피스로, 관계자에 따르면 거의 이용한 적이 없다고 한다. 로우는 2022년도 싱가포르 정부에 제출된 것으로 추정되는 에프엔타스틱의 수입과 지출 보고서를 입수해 그 내용을 정리한 기사를 게재했다.

해당 기사에 따르면, 에프엔타스틱의 2022년도 매출은 346만 3,672달러(약 45억 6천만 원), 총수익은 160만 달러(약 21억 원)로 보고됐다. '프롭나이트'의 판매 보수인지 개발비를 선차입한 것인지는 알 수 없지만, 수익의 대부분을 마이토나에서 얻은 것은 확실해 보인다.

지출은 디렉터, 즉 고토프체프 형제가 각각 20만 달러(약 2억 6천만 원)의 연봉을 받고, 연간 여행비로 30만 달러(약 4억 원)가 넘는 금액이 책정된 것이 의아하다. 그래도, 84만 달러(약 11억 원) 정도가 남았다고 볼 수 있다.

이것이 사실이라면 4일 동안 21만 장을 판매했다는 '더 데이 비포'에서 얻은 수익이 강제환불로 인해 한푼도 안될지언정 2023년에 재정난으로 폐업했다는 것은 부자연스럽다. 로우 편집자도 "남은 자금으로 신작을 만들려고 하는 것 아니냐"는 견해를 밝혔다.

■ '더 데이 비포'라는 패러디 영상이 알려주는 것들

에프엔타스틱의 폐업이 발표된 직후 코옵 서바이벌 '더 와일드 에이트'의 스팀 스토어 페이지에 변경이 있었다. 개발사가 에프엔타스틱에서 에이트 포인트(Eight Points)로 변경된 것을 보고 "사명을 바꿔 새로운 사기를 치려는 것 아니냐"는 소문이 돌았다.

그러나, 해외 매체 게임렌트(GameRant)가 퍼블리셔인 하이퍼트레인 디지털(HyperTrain Digital)을 인터뷰한 기사에 따르면 에프엔타스틱은 지난 2017년 이미 '더 와일드 에이트'의 개발을 포기했다고 한다. 이후 하이퍼트레인 디지털의 내부 팀이 개발 및 운영을 주도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에프엔타스틱 폐업 발표에 맞춰 스팀 스토어 페이지 정보를 업데이트한 것은 출시 이전부터 관계가 없었던 에프엔타스틱과 일정한 거리를 두기 위한 조치였다고 한다. 기사가 공개된 이후 '더 와일드 에이트'의 부당한 리뷰는 삭제됐으며, 유저 평가는 현재 '대체로 긍정적'을 유지하고 있다.

또한, 1월 24일에는 '300시간 만에 가짜 좀비 서바이벌 게임을 만들었습니다(I Made a Fake Zombie Survival Game in 300 hours)'라는 영상이 유튜브에 공개됐다. Crimson이라는 이름으로 게임 개발을 하는 개인 개발자가 언리얼 엔진과 1,500달러 상당의 에셋으로 만든 작품의 영상을 담고 있다.

다양한 인기 작품을 이어 붙인 듯한 '더 데이 비포' 트레일러에서 힌트를 얻어 개인이 어느 정도의 시간을 들여 만들 수 있는지를 시험해 본 것이라고 한다. 이것은 '더 데이 비포'의 패러디 영상으로, 실제 게임을 개발할 의도는 없다고 한다.

개발자의 이런 설명을 듣지 않고서는 일반인의 눈에 개발 중인 게임의 일부를 녹화한 것인지, 아니면 가짜 게임인지 전혀 알 수가 없다. 가짜 지도와 인터페이스 등을 더하면 가짜 게임인지 판단하는 것도 요즘은 어려워졌다. 만약 엔비디아가 협력했다는 '더 데이 비포'의 원본 영상과 게임 플레이 트레일러가 이렇게 만들어졌다면, 게임 매체와 게이머는 과도한 홍보에 감쪽같이 속았을 것이다.

[그림] "속았다!"는 평가가 잇따랐던 하이퍼트레인 디지털의 '더 와일드 에이트'. 하지만, 에프엔타스틱은 2017년 이후 관여하지 않았다고 한다

■ 그럼에도 불구하고 재기를 시도하는 에프엔타스틱

'더 데이 비포'의 서비스가 종료되면서 에프엔타스틱의 난장판도 끝날 것으로 보였다. 하지만, 지난 1월 25일 에프엔타스틱의 공식 X에 에듀왈드 고토프체프가 새로운 성명을 올렸다.

이미 삭제된 메시지지만, "인터넷의 불특정 소스로 인해 부정확한 정보가 넘쳐나고 있다"는 말로 시작한다. 게이머와 투자자를 속이려는 의도는 전혀 없었으며, 특정 블로거와 인플루언서들이 악의적인 상상력으로 악명을 퍼뜨려 억울하다는 내용이다. 또한, 마이토나와의 파트너십은 양호해 앞으로 뉴질랜드에서 설립한 합작회사 마이토나에프엔타스틱(MytonaFntastic)을 공동으로 운영할 것이라는 내용도 적혀 있었다.

폴란드 게임 매체 CD-액션이 게재한 기사에 따르면, 고토프체프는 올해 들어 여러 게임 개발자들에게 연락을 취한 것으로 보인다. 용건은 새로운 모바일 게임 프로젝트의 개발 참여 요청이었다. 에프엔타스틱이라는 사명을 버리지 않고, 그대로 재기를 꾀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림] 에듀왈드 고토프체프가 1월 24일에 공개한 이후 삭제된 공식 X의 메시지

참고로 기사에 따르면 러시아 및 벨라루스 국외에 있는 개발자 중 고토프체프의 제안을 수락한 사람은 없다고 한다. 특히, '더 데이 비포' 개발 중에 '우리 회사의 자원봉사 문화'라며 경력이 짧은 개발자를 대상으로 무상으로 일하게 했다는 이야기가 퍼져 많은 비난을 받은 바 있다. '봉사 정신'을 자랑스럽게 이야기하던 고토프체프 형제를 따르겠다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고토프체프 형제가 고의로 사기를 치고자 '더 데이 비포'를 기획하고, 오랜 시간을 들여 악의적인 계획을 세웠다고는 믿고 싶지 않다. 어쩌다 보니 개발 중인 신작이 외부에서 너무 큰 기대를 받았고, 싱가포르에 지사를 만들 정도로 지원도 뒤따른 것 같다.

하지만, 그들은 개발 진행 상황을 게이머들에게 성실하게 설명하는 것을 잊고, 자신들의 즐거운 생활을 홍보하는 데 열중했다. 말하지 않아도 될 내용을 올렸다가 지우기도 반복했다. 주목받는 것에 익숙하지 않아 그만 통제력을 잃은 것이다.

정말 자신의 프로젝트나 비전에 자신이 있었다면, 비판과 조롱을 자양분 삼아 '더 데이 비포'를 계속 개발하며 개선해 나갔을 수도 있다. '노 맨즈 스카이'나 '사이버펑크 2077'처럼 출시 후 악평을 받았지만, 꾸준한 개선을 통해 악평을 뒤집을 수도 있었을지 모른다. 하지만, 지금으로서 에프엔타스틱이 재기를 노리기는 어려울 것이다.

[그림] 유비소프트의 '디비전' 아트워크(왼쪽)와 '더 데이 비포'의 아트워크(오른쪽)다. 각도를 조금 조정하고 배경을 추가하거나 트레이싱을 한 것 같은 느낌으로 인해 다소 의심스러운 이미지화에 가깝다.

장용권 기자  mir@gamev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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