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부턴가 국내 게임 시장은 지적재산권(IP)를 활용해 만들어진 게임이 지배하기 시작했다. 과거에 흥행했던 유명세를 활용한 만큼 소비자들, 특히 새로운 것에 익숙하지 않은 중장년층이 주 고객이 되는 만큼 성공 가능성도 높다.
게다가 이전에 있던 것들을 참고하고 활용해 만들기 때문에 만드는 기간도 완전 신작 대비 짧은 데다가 사업을 하는 입장에서 외면하기 힘든 방법이다.
실제로 30일 현재 구글 플레이스토어의 매출 순위 중 1위에서 30위까지의 게임을 보면, 기존의 IP를 활용한 게임의 숫자는 총 17개다. 절반이 넘는 숫자다. 게다가 아직 출시되지 않은 IP 기반 게임들도 많은 상황이다.
그런 면에서 최근 속속 공개되고 있는 도전적 시도들이 눈에 띄고 있다. 특히 얼마 전 이례적으로 신작 공개 행사를 진행한 라인게임즈의 사례를 보자. 지난 29일 라인게임즈는 신작 라인업 발표회인 ‘LPG 2021’을 개최했다.
이를 통해 액션 MORPG ‘더 밴시’, 어드벤처 RPG ‘크리스탈 하츠2: 차원의 나침반’, 핵앤슬레시 RPG ‘언디셈버’, 스튜디오 라르고의 어드벤처 게임 ‘프로젝트 하우스홀드’, TPS 게임 ‘퀀텀 나이츠’가 발표됐다. 모바일은 물론 PC와 콘솔까지 플랫폼도 다양하다. 준비한 기간만 4년이라고 밝혔다.
그런데, 행사장 한쪽에 작은 규모로 만들어진 체험대가 있었다. 리메이크 발표 이후 5년 만에 처음으로 실체를 드러낸 ‘창세기전: 회색의 잔영’이었다. 발표 행사에서는 관련된 발표가 전혀 없이 체험만 할 수 있도록 했다.
사실 이름값을 보면 발표한 신작들보다는 ’창세기전‘ 쪽이 훨씬 더 높다. 유저들의 기대나 관심도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라인게임즈는 창세기전을 조용히 알리는 쪽을 택했다. 대신 새로운 도전을 하는 게임 쪽에 주목도를 더 끌어올렸다. 신규 IP에 대한 라인게임즈의 자세를 알 수 있는 부분이다.
대형 게임사 중에서는 가장 많은 도전을 하고 있는 넥슨도 최근 신규개발본부의 대규모 채용을 진행하면서 내부에서 개발 중인 프로젝트를 전격 공개했다. 그런데 공개된 라인업 9종 중에서 기존의 IP를 활용해 개발 중인 게임은 ’테일즈위버M’ 단 하나에 불과했다.
나머지 ‘신규 MMORPG’, ‘Project SF2’, ‘프로젝트 HP’, ‘DR’, ‘P2’, ‘P3’, ‘MOD’, ‘FACEPLAY’ 등으로, 모두 새롭게 개발 중인 게임이었다. 신규개발본부를 총괄하는 김대훤 부사장도 “IP라고 불릴만한 게임 5개 정도는 만들어보자고 천명했다. 3년을 바라보고 있다”며 새로운 도전을 예고했다.
‘검은사막’을 흥행시키고 모바일 버전과 콘솔 버전도 내놓은 펄어비스는 김대일 의장의 지휘 하에 트리플A급 프로젝트인 ‘붉은사막’을 비롯해 ‘도깨비’와 ‘플랜8’ 등 다양한 장르와 플랫폼에서 신규 IP를 만들기 위해 준비 중이다.
시프트업도 대표 게임인 ‘데스티니 차일드’가 있지만, 기존 IP를 활용하지 않고 트리플A급 타이틀을 추구하는 ‘프로젝트 이브’는 물론 미소녀와 슈팅을 결합한 ‘프로젝트 니케’를 개발 중이다.
새로운 IP를 만들려면 기존 IP 활용 대비 훨씬 더 많은 노력이 들어간다. 기획부터 시작해 캐릭터, 세계관, 스토리, 게임 방식 등을 0에서 시작하는 만큼, 기존에 없었던 새로운 것을 만들기 때문이다.
모든 회사가 도달하기 편한 흥행 공식만을 따라간다면 소비자는 외면하기 마련이다. 안 그래도 확률형 아이템에 대한 논란에 더해 IP를 활용한 비슷한 게임이 주로 나오면서 국내 유저들은 피로감을 느끼고 있다. 그 피로감이 누적되면 결국 불감증이 찾아오는데, 그 불감증을 타파하는 데는 새로운 것만 한 게 없다.
개발사 입장에서 반드시 흥행이 보장되지 않더라도 손실을 감수하고 도전한다는 것, 그 자체는 정말로 어려운 일이고 아름다운 일이다. 열심히 준비한 결과가 나온다면 소비자들도 그에 맞는 좋은 호응을 할 것이다.
최근 영화계는 경사가 이어지고 있다. '기생충'이나 '미나리' 등이 해외 영화제에서 연이어 수상하며 세계적인 주목을 받고 있다. 하지만 아직까지 게임에서는 최고의 게임을 뽑는 국제적 행사에서 아직 수상의 영예를 누린 적이 없다.
지금 열심히 만들고 있는 트리플A급 신작이 '올해의 게임'급 상을 받는다면 그만큼 한국 게임계의 위상도 높아질 것이다. 지금도 열심히 개발에 몰두하고 있는 모든 분을 응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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