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 벡스코에서 지난 11월 13일 개막한 게임쇼 지스타 2025에서는 다양한 연사들의 컨퍼런스 G-CON 2025가 함께 개최됐다.
행사 둘째 날인 14일에는 ‘드래곤 퀘스트’ 시리즈의 창시자로 알려진 호리이 유지의 강연 ‘드래곤 퀘스트의 창조와 유산'이 진행되었다.
호리이는 11월 3일 '욱일소수장(旭日小綬章)'을 수상해 큰 화제가 된 지 얼마 되지 않았다. 게다가 한국에서 강연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라, 회장에는 많은 관객이 모였다. 대부분은 드래곤 퀘스트 팬이었으며, “드래곤 퀘스트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는 질문에 대다수가 손을 들었다. 호리이가 지금까지의 게임 개발을 돌아보며 다양한 질문에 답한 강연의 모습을 리포트하겠다.
우선, '욱일소수장' 수상에 대한 소감을 묻자 과거 게임이 세간의 냉담한 시선을 받았던 점을 떠올리며, 게임 크리에이터가 국가로부터 표창받는 시대가 왔다는 사실에 감개무량하다고 답했다.
초대 드래곤 퀘스트가 발매된 것은 1986년의 일이다. 당시 드래곤 퀘스트를 개발하게 된 계기는 무엇이었을까. 호리이는 그 당시 RPG가 매니악한 장르였고 PC로 즐기는 것이었기에, 액션 게임 위주인 패밀리 컴퓨터로 만들면 반드시 인기를 끌 거라 생각했다고 한다.
원래 그는 만화가 지망생이었으나 컴퓨터를 접하고 그 상호작용에 매료되었다. 그리고 “이걸로 만화를 그리면 어떨까”라고 생각한 것도 드래곤 퀘스트를 만든 계기 중 하나라고 한다. 드래곤 퀘스트에 지문이 거의 없고 대사로 진행되는 것도 만화가 대사로 진행되기 때문이다. 대사는 지문보다 읽기 쉬우므로 당시의 하드코어 RPG에 비해 이해하기 쉽게 만들고 싶다는 생각도 있었던 모양이다.
또한 '울티마'나 '위저드리' 같은 RPG는 자유도가 높은 만큼 개발이 어렵다. 그래서 드래곤 퀘스트는 레일을 따라 플레이하면 된다는 구조로 만들었다.
이어서 "용사가 마왕을 쓰러뜨리는 이야기는 어떻게 생각했는지"라는 질문이다. 그는 RPG의 재미 요소 중 하나인 싸워서 자신이 강해지는 점을 지적했다. 그리고 강해진 자신이 무엇을 해야 할지 생각했을 때, 직관적으로 이해하기 쉬운 쓰러뜨려야 할 존재로 마왕을 떠올렸다고 한다.
초대 드래곤 퀘스트에서 처음부터 용왕의 성이 보이는 것도, “저기로 가면 되겠네”, “어떻게 가면 될까” 하고 목표나 흥미를 가질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다. 한편, 드래곤 퀘스트 1의 기획은 10명 정도의 동료들과 아이디어를 내면서 만들어졌다.
“플레이어가 어떻게 재미있어 할까”를 생각했는지에 대한 질문에 대해서는 이름에 대해 이야기했다. 초대 드래곤 퀘스트는 자신이 입력한 이름을 왕이 불러준다. 당시에는 보기만 하는 매체였던 텔레비전에서 자신의 이름이 불려지는 것으로 재미를 느낄 거라고 생각했다고 한다.
그렇게 플레이어를 기쁘게 하고, 설레게 하고 싶다는 마음은 지금도 변하지 않았다. 사람의 가장 큰 놀이는 인생을 체험하는 것이며, 책이든 영상이든 감정이입 하여 다른 자신을 체험할 수 있다. 게임은 그것을 표현하기 쉬운 매체라고 그는 말했다.
대사는 플레이어의 반응을 고려해 결정했다고 한다. 가장 이해하기 쉬운 예는 용왕의 “세상의 반을 주마”라는 대사일 것이다. 이에 ‘예’ “아니오”로 답할 수 있다는 점이 충격적이다.
드래곤 퀘스트 발매 후, 영향을 받은 다양한 RPG가 등장해 왔지만, 그것들이 어땠냐는 질문에는 “라이벌이긴 하지만 즐거웠다”고 답했다. 자신이 만든 것은 내용이 다 드러나지만, 다른 사람이 만든 것은 순수하게 즐길 수 있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자극을 받은 RPG에 대해서는 '젤다의 전설'을 꼽았다. 지금으로 말하면 오픈 월드적인 구성이 마음에 들었다고 하며, 최신작인 '젤다의 전설 티어즈 오브 더 킹덤'도 많이 즐겼다고 한다. 이런 이야기에서 알 수 있듯이, 호리이는 현역 게임 디자이너인 동시에, 그저 게임을 즐기는 플레이어이기도 하다.
호리이 하면 드래곤 퀘스트 이전에 어드벤처 게임을 제작했던 것으로도 유명하다. “액션 게임 등을 만들고 싶은 생각은 없었나?”라는 질문에는 이야기를 만들고 싶은 욕구가 더 강했다고 답했다.
이어 드래곤 퀘스트의 이야기를 어떻게 만들었는지 묻자, “어떤 의미에서는 마왕을 쓰러뜨리는 건 정해져 있으니까, 그 중간에 무슨 일이 일어나면 재미있을지 생각하고 있다”라고 답했다. 아침에 일어나 보니 주변에 있던 이들이 모두 사라져 버리는 이벤트 등이 한 예로, 호리이는 장난을 좋아해서 플레이어에게 장난을 치는 이벤트를 넣고 싶어 한다고 한다.
"시리즈마다 엔딩이 먼저 정해져서 거꾸로 계산하며 게임을 만드는지, 아니면 시나리오에 따라 만드는지"에 대한 질문에는 시리즈마다 다르다고 답했다. 예를 들어 '드래곤 퀘스트 5'의 결혼 이벤트는 진지하게 고민해 주길 바라는 마음에서 만들었다. 매번 어떤 재미를 제공할지 고민하고 있다고 한다.
'드래곤 퀘스트 6'은 중반 이후에 새로운 맵을 내놓는 대신 초반부터 오갈 수 있으면 어떨까 하고 꿈의 세계와 현실 세계를 떠올렸다. 이런 아이디어를 즐겁게 생각해낸다고 해도 역시 원하는 형태로 만드는 건 힘들고, 그만큼 완성되었을 때의 기쁨은 남다르다고 한다.
한편, 호리이는 시나리오를 밤에 집중해서 쓰는 타입으로, 낮에는 빈둥거리다가 밤이 되면 “해야지” 하며 몰두한다고 한다. 여름방학 숙제도 막판에 몰아서 끝내는 식으로 "내일 할 수 있는 일은 내일 하자”는 식이다. 그는 집중하기 위해서는 아무것도 하지 않는 시간이 필요하며, 그 대신 쓰기 시작하면 빠르게 일을 처리한다고 한다.
지금까지 드래곤 퀘스트 시리즈를 만들어 오면서, 인상 깊었던 분기점은 어디냐는 질문에 그가 꼽은 타이틀은 '드래곤 퀘스트 4'였다. '드래곤 퀘스트 3'가 사회 현상이 될 정도의 인기를 얻었기 때문에, 차기작에 대한 기대가 높아져 압박감에 시달렸다고 한다. 그래서 생각해 낸 것이 캐릭터를 세우고, 장(章)을 나누어, 동료들의 인생을 그려 보자는 것이었다. 이벤트도 캐릭터를 깊이 있게 파고드는 것들을 준비했다.
이러한 도전 덕분에 드래곤 퀘스트의 캐릭터는 더욱 매력적으로 변해갔다. 캐릭터가 재미있으면 어떻게 움직일지 보고 싶어진다. 플레이 동기가 될 뿐만 아니라, 스토리가 어떤 이야기였는지는 기억하지 못해도 캐릭터는 기억한다는 사람들도 생겨나게 되었다.
도전이라는 측면에서는 '드래곤 퀘스트 10'도 큰 존재였다. 온라인 게임이 된 이 작품을 넘버링 타이틀로 할지 여부에 대해서는 정말 고민했다고 한다. 결국 더 많은 사람이 즐겼으면 하는 마음, 그로 인해 온라인 게임의 재미를 알리고 싶다는 생각에 넘버링 타이틀로 결정했다.
다음 화제는 최근 발매된 '드래곤 퀘스트 1&2'에 관한 것이다. 고전 작품을 리메이크하며 무엇을 중요하게 생각했는지 묻자, 호리이는 HD-2D판 '드래곤 퀘스트 3' 이후에 내놓은 작품인 만큼 단순히 리메이크만으로는 부족하다고 생각했다고 답했다. 기억은 미화되기 마련인데다, 초대 드래곤 퀘스트는 단순한 게임이었고, 이벤트도 대사도, 몬스터도 적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미화된 기억의 재현, 즉 당시 모두가 이런 생각을 하며 즐겼을 거라 생각되는 부분을 재현해보자는 아이디어가 떠올랐다고 한다. 또한 '드래곤 퀘스트 2'에서는 “아!” 하는 감탄을 자아내기 위해 오랜만에 직접 엔딩 시나리오를 썼다. 맵에 직접 인물을 배치하고 대사를 작성하는 등의 작업은 '드래곤 퀘스트 7'까지였다고 한다.
'드래곤 퀘스트 7'은 호리이에게 추억이 깃든 작품이다. 하드웨어가 플레이스테이션으로 전환되면서, 그간 용량과의 싸움이었던 ROM 카세트 대신 CD-ROM을 사용할 수 있게 되었다. 그래서 욕심을 부려 만들다 보니 지나치게 과하게 만들었다고 한다.
특히, 맵을 모으면 재미있지 않을까 하는 발상 아래 석판을 모아 새로운 맵으로 가는 흐름을 만들었지만, 맵을 빙글빙글 돌려 석판을 찾는 건 어려워 좌절하는 사람도 많았다. 그래서 2026년 2월 5일 발매 예정인 리메이크작 '드래곤 퀘스트 7 Reimagined'에서는 찾기 쉽게 했다고 한다. 발매를 앞둔 본작에 대해 호리이는 “이제 거의 다 완성됐다!”라고 코멘트했다.
지금까지 줄곧 게임 디자이너로 활동해 온 호리이지만, 동기는 계속 유지되어 왔을까. 이 의문에 대해 그는 게임 제작이 힘들다고 생각한 적은 있지만, 여기까지 만들어 왔으니 계속 만드는 수밖에 없다고 답했다. 많은 사람들의 기대를 받고 있을 뿐만 아니라, 자신이 게임을 좋아하기 때문에 “이런 놀이를 제공하고 싶다”는 생각이 떠올라 그것을 구현하고 있다고 한다.
게임 제작의 즐거움은 개인적인 즐거움, 동료와 함께 만드는 즐거움, 그리고 발매 후 플레이어의 피드백을 받는 즐거움 모두를 느끼고 있다. 특히 지금은 인터넷으로 플레이한 사람들의 목소리를 읽을 수 있는 시대라, 호리이는 X(구 트위터)나 게임 실황을 보며 “내가 만든 게임을 이렇게 즐기고 있구나”라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드래곤 퀘스트 시리즈는 내년에 40주년을 맞이한다. 호리이는 만들고 있을 때는 길게 느껴졌지만, 돌이켜보면 순식간이었다고 한다. "드래곤 퀘스트 시리즈가 지금까지 사랑받아 온 비결이 무엇이냐"는 질문에 “일종의 커뮤니케이션 도구”라는 점을 꼽았다. 예를 들어, 레벨업하거나 수수께끼를 풀었다는 것을 친구에게 자랑한다. 형에게 레벨업을 부탁 받는다. 너무 많이 해서 부모님께 혼난다. 이런 다양한 추억이 있기에 드래곤 퀘스트가 존재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런 추억을 플레이어들이 기억해 주는 것이 기쁘다고 말했다.
드래곤 퀘스트 시리즈뿐만 아니라 게임 크리에이터로서 앞으로 해보고 싶은 일을 묻자 그는 챗GPT 같은 AI를 활용한 게임을 꼽았다. 예를 들어 범인 찾기 미스터리를 AI 부하와 대화하며 진행하거나, AI에게 취재하는 식이다. 또한 VR에도 관심이 있다고 하며, 새로운 기술에도 주목하고 있는 모습이었다.
마지막으로, 현장에 모인 게임 개발자들에게 응원의 말도 전했다. 게임 개발자라면 다양한 게임을 만들고 싶어 하고, 많은 아이디어를 가지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어려운 점은 머릿속에 있는 것을 어떻게 형태로 만들 것인가이다. 그는 무엇보다 그것을 형태로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며, 실패해도 배울 점이 있으니 밖으로 내놓을 방법을 고민해 달라고 말했다.
호리이가 제작한 어드벤처 게임 '포토피아 연쇄 살인사건'은 호리이 자신이 그림을 그리고, 대사를 쓰고, 프로그램을 썼다. 실현을 위해 필요한 것을 조금씩 익혀 나갔다. 다만 당시 BASIC으로 익힌 명령어는 단 4개뿐이었다고 한다. 처음부터 두꺼운 책의 내용 전부를 다 익힐 수는 없다. 게임 제작 방법도 마찬가지다. 튜토리얼로 모든 것을 가르쳐 주면 되는 게 아니다. 한꺼번에 다 가르쳐 주면 오히려 귀찮아질 뿐이니, 조금만 익히고 나머지는 알아서 진행해 나가면 된다. 우선 시작점부터 만들어 나가며 확장해 나가는 중요성을 강조하며 강연을 마무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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