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T업계에서 소비자에게 완전경쟁 상황과 독과점 가운데 선택하라고 했을 때, 일부러 독과점을 고를 리는 없다. 그렇지만 요즘 하드웨어 업계를 보면 가장 기술력이 많이 요구되는 분야는 거의 독과점에 가까운 상황이 만들어지고 있다.
특히 그래픽 카드에서 이런 모습이 극심하다. 소비자의 희망과는 상관없이 업체간의 경쟁에서 도태된 업체 외에, 신규업체가 시장에 진입하지 못해서 나타나는 안타까운 현상이다.
물론 경쟁 상황이 반드시 좋은 것만은 아니다. 너무도 많은 업체들이 난립해서 호환성도 없이 각기 다른 표준을 가지고 다투다보면, 소비자는 자칫 좋은 콘텐츠를 즐기기 위해서 이것저것 모두 구입해야 하는 상황을 맞을 수도 있다.
수십년 전 콘솔 게임기나 PDA 시장이 바로 그랬다. 결국 다양성 있는 하드웨어가 일정한 표준에 맞게 호환성을 유지하며 경쟁하는 상황이 가장 바람직한 것이다.
그런 면에서 인텔에서 새로 내놓은 아크(ARC) 외장 그래픽 가속기(GPU)는 상당한 기대를 갖게 만든다. 시장 플레이어가 엔비디아 아니면 AMD 밖에 없는 데다, 단순 GPU 성능에서 엔비디아가 홀로 독주하는 상황이라 제대로 된 경쟁 시장이 아니기 때문이다.
얼마전 엔비디아 CEO 젠슨 황이 "무어의 법칙은 죽었다"라면서 신제품 가격을 낮게 가져갈 생각이 없음을 밝힌 것은 이런 경쟁 부재 상황이 만들어낸 현상이다. 여기에 대고 단순히 항의하는 것보다 백배 효과적인 것은, 실력있는 경쟁자가 이 시장에 들어와 제품을 내놓는 것이다. 그리고 마침 인텔이 그런 움직임의 첫 발을 뗐다.
지난 13일, 인텔은 한국 시장에 씨넥스존 등을 통해 아크 A750/A770 제품을 출시했다. 이 제품 성능에 대해 해외 벤치마크 매체인 탐스하드웨어에서 지난 5일 리뷰를 통해 성능을 측정하고 분석했다. 해당 보도내용에 따르면 기대치에 따라서 다르긴 해도 비교적 쓸만한 제품이라는 평가를 내릴 수 있다.
해당 내용을 살펴보자. 우선 핵심성능에서 A770은 최대 32개의 레이 트레이싱 유닛(RTU)을 내장했다. 이것은 엔비디아 RTX 3060의 28개보다 많지만 RTX 3060 Ti의 38개보다는 적다.
한편 AMD의 RX 6650 XT에는 32개의 레이 가속기가 있는 반면, RX 6700 XT에는 40개의 레이 가속기가 있다. 다만 AMD의 단일 RTU 성능은 비교대상인 나머지 GPU 공급업체보다 약한 것으로 파악됐다.
인텔은 추가되는 매트릭스 코어와 RTU에 훨씬 더 큰 중점을 둔 점에서 AMD 보다 엔비디아 GPU의 설계 방식과 비슷하다. 강력한 성능을 가진 RTU를 많이 넣어서 근본적인 하드웨어 성능을 높이는 방식이다.
흥미로운 점은 인텔이 현재 AV1 및 VP9 하드웨어 가속 비디오 인코딩을 보유한 유일한 GPU 회사라는 점이다. 현재 초고해상도 동영상 편집과 재생을 위해서도 GPU가 사용된다는 점에서, 이 기능을 확실하게 지원한다는 건 매우 강력한 경쟁력이다.
탐스하드웨어에 따르면 AMD와 엔비디아는 곧 출시될 RDNA 3 및 Ada 아키텍처에 AV1 지원을 추가할 예정이지만, 고급 제품이 아닌 중간급 제품 시장에는 이 기능이 탑재되지 않을 수도 있다는 전망이다. 따라서 AV1 코덱에 관심이 있고 350달러 이상을 지출하고 싶지 않다면 아크 A770, A750 및 A580은 2023년 소비자가 선택할 수 있는 최고의 옵션이라는 평가다.
경쟁 목표 제품은 엔비디아 RTX 3060인데 A770은 비슷한 가격이고, A750은 RTX 3060보다 확실히 낮은 가격이다. 여기에 AMD RX 6700 XT는 더 높은 400 달러 가격대 제품으로 가야만 더 높은 성능을 제공한다.
가격으로 본다면 인텔은 아크 A750 및 A770 제품의 공격적 가격 책정으로 중급 GPU 시장 점유율을 노리는 것으로 보인다. 탐스하드웨어 총평에 따르면 이 제품은 뛰어난 가격 대비 성능, 우수한 비디오 인코딩 하드웨어, 16GB VRAM, XeSS, AV1 지원 등의 장점을 가지고 있다.
물론 단점도 있다. 아직은 최적화가 안된 드라이버, 예상보다 늦은 제품 출시일, 경쟁 제품보다 더 많이 소모하는 전력, 자체 업스케일링 기술인 XeSS가 엔비디아의 동일 기술인 DLSS보다 떨어지는 점이 지적됐다.
특히 국내에서는 환율로 인해 달러 가격보다 훨씬 비싸진 구입가격과 전력소모가 크게 지적됐다. A770 16GB 제품은 현재 다나와 가격으로 589,000원에 팔리고 있다. 초기 제품을 사용하는 데 따르는 여러 버그를 겪는 어려움까지 감안한다면, 게이밍용으로 굳이 인텔 제품을 사서 고생할 필요가 있느냐는 의견이 많다.
어쨌든 현재 GPU 시장은 양사 독점에서 벗어날 필요가 있다. 현 상황이 계속될수록 소비자는 다양한 특성과 가격대의 제품을 구입할 기회를 잃을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치열한 경쟁을 부활시키고 선택지를 더 많이 주는 인텔 제품 출시는 반가운 일이다. 제품 자체도 처음 내놓는 카테고리인 외장 GPU치고는 경쟁력이 있는 편이다.
그러나 GPU 시장은 한번 제품을 내놓고 승부를 낼 수 있는 곳이 아니다. 꾸준히 다양한 라인업을 내놓으면서 성능과 가격 양쪽에서 충실하게 매력을 올려나가야 한다. CPU 시장의 명성과 실력을 기반으로 해서, 내장 GPU로 이미 기반을 닦으면서 들어온 인텔의 분발을 기대한다. 지금 소비자에게는 더 많은 선택지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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