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큰 어려움을 겪고 있는 인텔이 새롭게 CEO를 선임했다. 인텔이 어떤 회사인가? 단순히 CPU를 만드는 것을 넘어서 오늘날 PC의 거의 모든 규격과 표준을 정립한 회사가 바로 인텔이다. 히지만 인텔은 CEO들의 실책과 모바일 시대에 제대로 적응하지 못한 것, 그리고 AMD라는 강력한 경쟁사의 대응을 오판하고, 사실상 마지막 기회인 AI에도 실기하면서 큰 어려움을 겪고 있다. 더불어 인텔의 핵심이었던 생산 시설 파운드리가, 이제는 인텔을 비대하게 만들고, 경쟁력을 떨어트리는 주범으로 취급 받고 있다.
그동안 인텔의 CEO들은 이를 해결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해왔고, CEO를 선임하는 이사회는 기존과 달리 자주 CEO를 교체하면서 어떻게든 살아남기 위해 노력하고 있는 것도 사실. 새롭게 교체된 최초의 비 미국인 CEO 립부 탄을 통해 과연 인텔은 살아남을 수 있을 지를 전망해보자.
이번에 선임된 CEO는 인텔의 적자라고 할 수 있는 펫 갤싱어의 사임 후에, 고심 끝에 선임된 새로운 CEO가 바로 립부 탄이다. 립부 탄이라는 이름에서 알 수 있듯, 그는 전통적인 미국인이 아니다. 싱가폴 출신이지만, 본디 중국 복건성 출신의 화교라고 할 수 있다. 한자 이름은 譚立普.
립부 탄은 월든 인터내셔널 회장 겸 월든 카탈리스트 벤처스의 창립 관리 파트너다. 월든 인터내셔널은 1986년 설립된 미국계 벤처캐피털로 IT, iOT, AI, SaaS 부문에 주로 투자하는 회사다. 지금까지 약 300개 이상의 회사에 투자했으며, 굵직한 회사만해도 AMD가 인수한 노드AI, 인텔이 인수한 하바나랩스, 미국 AI 반도체 기업 삼바노바 시스템 등이 대표적이다. 국내에도 투자를 게을리하지 않아, 게임기업 컴투스, 선데이토즈, 미래나노텍 등에도 투자한 전력이 있다. 즉 최근의 행보는 전통적인 기술을 중시하는 IT CEO가 아닌 IT 벤처 투자자의 모습이다.
실리콘밸리 투자자로서도 잘 알려져 있지만, IT업계에서도 입지적인 인물인 까닭에 인텔이 그를 선임한 것이기도 하다. 2008년부터 약 15년 간 반도체 설계 회사인 케이던스 디자인 시스템을 이끌었고, 퀄컴에 인수된 누비아, 온세미에 인수된 콴테나, 마벨이 인수한 아콴티아, 이노비움 등의 주요 기업의 이사회 멤버이기도 했다. 그는 현재도 HPE, 소프트뱅크, 슈나이더 일렉트릭 에너지 등 세계적인 기업의 이사회 멤버다.
이번에 CEO로 선임되었지만, 인텔과도 인연이 깊다. 립부 탄은 케이던스 디자인 시스템 등 반도체 업계의 풍부한 재직 경험을 바탕으로, 지난 2022년부터 인텔 이사회의 멤버가 되었고, 특히 문제되고 있는 인텔 파운드리 사업 자문위원회 의장까지 지냈다. 하지만 2024년 8월 돌연 이사회에서 사임해 의문을 자아낸 바도 있다. 당시 정확한 사임 이유는 밝혀지지 않았지만, 립부 탄은 인텔의 대규모 인력 구성과 계약 생산 방식, 위험 회피적이고 관료주의적인 인텔 문화를 놓고 우려를 제기했고, 당시 CEO인 펫 겔싱어와 마찰을 일으킨 게 아닌가 싶다. 이를 전후로 인텔은 배당금 중단, 자본 지출 삭감, 인텔 파운드리 사업 표류 등 어려움을 겪었고, 작년 12월 갈등을 겪던 펫 겔싱어가 사임하며 전래 없는 위기를 맞고 있으며, 이를 해결할 난파선의 선장으로 립부 탄이 선임된 것이다.
그를 굳이 비유하자면, 현대자동차에 철강이나 기계공학, 자동차 회사 출신이 아니라, 오토캐드 같은 자동차를 만드는 핵심 SW회사 출신이라고 보면 이해가 쉬울 수 있다. 아무튼 인텔과는 큰 관계가 있지만 결코 인텔 내부자라고 볼 수는 없으며, 인텔 협력사 출신이라고 보는 것이 옳을 듯 하다.
■ 핵심은 파운드리 사업의 매각이나 지속이냐의 결정
립부 탄 신임 인텔 CEO의 가장 중요한 업무는 결국 가장 큰 부담이 되고 있는 인텔의 핵심인 파운드리를 어떻게 할 것인지가 될 전망이다. 인텔 파운드리는 인텔이 설계한 반도체를 직접 제품으로 만들거나, 엔비디아 같이 공장이 없는 이른바 랩리스(Fabless)의 실제 생산을 외주 받아 진행하는 사업이다. 기술은 물론 거대한 자본이 들어가는 사업인 까닭에, 한동안 투자를 게을리한 인텔은, 고성능 첨단공정 제품은 대만 TSMC에, 중급 제품은 삼성에, 저성능 제품은 중국업체들에 완전히 밀리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립부 탄은 케이던스 CEO 시절, 전자 설계 자동화 SW 기업인 포트폴리오를 고객 맞춤형 반도체 칩 설계로 완전히 바꿨다. 덕분에 케이던스 매출의 70%가 고객 맞춤형 반도체 칩 설계에서 나오고 있다.
다만 인텔의 경우 직접 공장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 장점이자 단점. SW회사인 기존 케이던스의 방법을 그대로 쓸 수는 없다. 그래서 당분간은 파운드리를 그대로 유지하는 것으로 갈 것으로 보인다. 특히 생산시설의 미국내 복귀를 강력한 정책으로 내세우고 있는 트럼프 2기에서는 외국기업에게 미국내 공장 이전을 압박하고 있는 상황에서, 기존 미국 공장을 폐쇄하는 것은 모순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인텔만의 힘으로 파운드리를 유지하기는 한계에 다다른 것도 엄연한 사실. 이제는 파운드리 절대 원톱인 TSMC를 중심으로 엔비디아, AMD, 브로드컴 등의 미국 반도체 기업이 힘을 모아 합작 투자 형태로 인텔 파운드리를 운영한다는 것이 현재까지의 계획인 것으로 보인다. 현실적으로는 TSMC가 인텔 파운드리를 때어가는 것이 최고지만, TSMC는 엄연한 대만 기업인 까닭에, TSMC가 인텔 파운드리 사업부를 사실상 운영하고, 대신 인텔 지분은 50% 이상을 소유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물론 이런 계획에는 엄청난 세금 지원이 필요한 사항이라 트럼프 행정부의 승인이 필요할 것이다.
■ 주목되는 브로드컴 전력과 복건성 커넥션
여기에서 주목되는 것은 립부 탄의 능력과 함께 인수기업의 하나로 거론되는 브로드컴의 전력과 복건성 커넥션이다. HP의 반도체 부분만 때어낸 다음, 사모펀드를 거쳐 오늘날에 이른 브로드컴은, AI반도체 시장의 급성장과 함께, 네트워킹 및 커넥티비티 솔루션 분야에서의 강점을 바탕으로 엄청난 성장을 거듭하고 있다. 이는 마치 과거 인텔이 PC와 서버 시장을 주도하며 반도체 업계의 강자로 자리 잡았던 시절을 연상시킨다. 브로드컴 역시 회사가 어려움을 겪던 시설 사모펀드에 인수된 다음, 역시 중국어로는 진복양으로 쓰는 말레이지아계 화교인 호크 탄 CEO를 영입하며 급속한 발전을 이룬다. 그의 전략은 1등이 되는 제품만 남기고, 나머지 부분은 매각하며, 이렇게 매각한 대금을 기반으로 마치 사모펀드처럼 새로운 기업을 인수해 경쟁력을 높이는 것이다. 그리고 그 경쟁력의 하나로, 이번에는 예전에는 처다도 보지 못했던 인텔을 넘보고 있는 것이다. 물론 절반은 미국 정부의 압력이 있었겠지는 말이다.
아마 인텔 역시 이런 브로드컴의 전략과 마찬가지로, 핵심 경쟁력이 있는 부분만 남기고 나머지는 분사나 매각하는 식으로 처리할 가능성이 높다.
또 하나 주목되는 것은 이른바 복건성 커넥션이다. 흥미롭게도 AMD 리사 수, 엔비디아 젠슨 황, 브로드컴 호크 탄, TSMC CC웨이 그리고 새롭게 인텔 CEO가 된 립부 탄 모두 중국 또는 대만계이며, 또 하나는 본인 또는 그 뿌리가 중국 복건성 출신이라는 점이다. 흔히 말하는 화교들인 셈이다. 트럼프가 그렇게 싫어하는 중국계들이, 미국 IT의 거인 인텔을 살리는 기업의 CEO들이라는 점은 흥미로운 점이다.
인텔의 미래에 대해서는 여러가지 이론이 있을 수 있으나, 하나 확실한 것은 림부 탄 신임 인텔 CEO는 인텔 역사상 가장 어려운 시기에 취임한 인물이라는 점이다. 가장 단적으로 2020년 1월 인텔 시가총액은 2920억 달러였지만, 지금은 약 800억 달러로 약 70%가 사라졌다. 이제 인텔은 엔비디아의 30분의 1도 안되는 작은 회사가 되었다. 트럼프는 지원을 조건으로 인텔의 핵심, 파운드리의 분사를 원하고 있다. AMD에 비해 모바일을 제외하고는 앞서는 부분도 없다. 이런 상황에서 인텔이라는 큰 배의 키를 쥔 선장 림부 탄은 과연 어떤 행보를 보여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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