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월,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열린 '게임 개발자 콘퍼런스(GDC) 2025'에서는 게임 업계에서 잘 알려진 모니카 해링턴(Monica Harrington)이 'How Valve Became Valve: An Insider's Account(밸브가 지금의 밸브가 되기까지: 내부자가 들려주는 이야기)'라는 제목으로 토크 세션을 진행했다.
코어 게이머에게 밸브라고 하면 게이브 뉴웰(Gabe Newell)을 가장 먼저 떠올릴 텐데, 그와 함께 공동 창업자로 이름을 올린 이가 같은 마이크로소프트 엔지니어였던 마이크 해링턴(Mike Harrington)이다.
1983년 마이크로소프트에 입사한 뉴웰은 '윈도우'의 초기 3개 버전을 담당한 엔지니어 부서의 리더였다. 해링턴은 '레드바론(Red Baron)'으로 유명한 게임회사 다이나믹스(Dynamix)에서 마이크로소프트로 합류해 '윈도우 NT' 개발을 담당했다.
이번 세션을 진행한 모니카 해링턴은 마이크 해링턴과 사내 결혼한 소프트웨어 부문 마케팅 담당자였다. 1980년대 중반에 입사해 두각을 나타내며 '윈도우'와 '오피스', 그리고 '마이크로소프트 플라이트 시뮬레이터'에 이르는 소프트웨어 마케팅을 담당했다.
그녀는 빌 게이츠(Bill Gates)와 당시 마케팅 디렉터였던 멜린다 게이츠(Melinda Gates)에게 직접 보고하는 매니저까지 승진했다. 1995년 2월에는 1,600명이 있던 마케팅 부서에서 전년도 매출에 가장 많이 기여한 인물로 사내에서 표창을 받기도 했다고 한다.
■ 남편과 그의 친구가 갑자기 마이크로소프트를 퇴사
1995년 3월에 출시한 '마이크로소프트 밥(Microsoft Bob)'은 초기형 가상비서였지만, 어린이용이라는 비판을 받았다. 비즈니스 중심의 윈도우 사용자들에게는 어울리지 않아 인기가 없었다고 한다.
모니카에 따르면 연초 업계 행사에서 한 대형 유통업체가 “밥이나 그 개선판이 나오면 윈도우를 취급하지 않겠다”라는 말까지 들었다고 한다. 이를 게이츠 부부에게 보고한 결과, 이미 진행 중이던 밥의 후속 버전은 개발이 중단되었다.
이러한 판매 부진과 일정 조정으로 인해 마이크로소프트 내부에서는 2개월에 걸친 유급 휴가를 전 직원에게 폭넓게 허용했고, 모니카도 남편 마이크와 휴가를 떠나기로 했다. 해링턴 부부는 보트 타기를 취미로 삼고 있으며, 모니카는 10년 가까이 일에만 몰두했던 삶에서 벗어나 여유 있게 여행을 즐기고 싶었다고 한다.
그러나 마이크는 다른 계획을 세우고 있었다. 1995년 말, 윈도우 부문의 에이스급 프로그래머였던 마이클 에이브러쉬(Michael Abrash)가 '둠(DOOM)'의 대성공으로 큰 주목을 받던 이드 소프트웨어(id Software)로 이직했다.
이에 영향을 받았는지, 마이크는 뉴웰과 함께 게임 사업 창업을 물밑에서 추진하다가 1996년 갑자기 밸브를 창업했다. 모니카가 두 사람의 계획을 알게 된 것은 마이크가 5개월 치 사무실 임대료를 이미 지불한 후였다고 한다.
마이크는 모니카에게 “이드 소프트웨어로부터 기술을 라이선스받아 빠르게 게임을 개발했다. 적어도 게임 미디어로부터 3개의 상을 받고, 그 해의 톱10에 들어갈 만한 타이틀을 만들겠다"는 막연한 계획을 털어놓았다고 한다. 게임 비즈니스에 대해 잘 몰랐던 모니카는 그때부터 스스로 게임 비즈니스를 배우기 시작했는데, 배우면서 그 경쟁의 치열함에 놀랐다고 회고했다.
또한, 뉴웰과 마이크는 처음에는 마이크로소프트가 자신들의 게임을 퍼블리싱해 줄 것으로 생각했다. 하지만 당시 마이크로소프트는 사직하고 인재를 빼돌린 그들을 탐탁지 않게 여겼다. 따라서, 퍼블리싱 이야기는 나오지 않았고, 갓 창업한 밸브는 곧바로 난관에 봉착한다.
이는 마이크로소프트에 재직 중이던 모니카에게도 큰 문제였다. 당시에는 개발사가 직접 게임을 유통하며 사업을 키워나가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웠고, 밸브는 마이크로소프트의 경쟁자가 될 수 있는 퍼블리셔와 계약을 맺을 수밖에 없었다(밸브는 결국 '스팀'으로 이를 바꾸게 된다).
■ 시에라 온라인(Siera On-Line)과의 만남
유급 휴가를 마치고 모니카가 가장 먼저 찾아간 곳은 당시 마이크로소프트의 게임 부문을 이끌던 에드 프리즈(Ed Fries)였다.
모니카가 “마이크로소프트에서 퇴사한 남편과 함께 게임 회사를 설립하고, 마이크로소프트가 아닌 다른 퍼블리셔와 계약한다”는 속사정을 설명하자 프리즈는 마이크의 독립을 축하해줬다고 한다. 밸브는 아직 마이크로소프트의 경쟁자가 될 만한 게임조차 만들지 않았기 때문에 프리즈 등 경영진이 걱정할 만한 상황이 아니었다.
마이크가 상담을 요청한 곳은 당시 북미 게임업계의 메이저 퍼블리셔로 밸브 사무실과 가까운 곳에 본사를 두고 있던 시에라 온라인이었다.
시에라 온라인에서 결정권을 가진 임원들이 사무실에 와서 기획을 검토할 예정이었지만, 불행인지 다행인지 그날은 폭설로 인해 밸브 사무실에 도착한 사람은 CEO이자 수많은 어드벤처 게임을 만든 켄 윌리엄스(Ken Williams)뿐이었다.
서로가 게임 프로그래머라는 공통점이 있었기 때문에 이야기는 순식간에 진행되었고, 당시 게임 비즈니스에서 마이크로소프트도 손댈 수 없었던 시에라 온라인이 퍼블리셔로 선정되었다.
모니카에 따르면, 시에라 온라인에서 제공한 선불금은 100만 달러(약 14억 원) 정도였다고 한다. 이미 마이크와 뉴웰은 마이크로소프트의 스톡옵션을 포기하고 얻은 수십만 달러의 비용을 창업에 쏟아부었지만, 게임 개발을 계속하기 위해서는 더 큰 비용을 자비로 충당해야 했다.
'하프라이프'의 데모는 1997년 6월에 열린 E3에서 공개됐고, 행사에서 발표된 '최고의 액션 게임'을 수상하면서 주목도가 높아졌다. 그러나 밸브의 경영을 힘들게 했던 것은 뉴웰과 마이크의 고용 스타일이었다고 모니카는 말한다. 모니카가 잘 알지 못하는 프로그래밍이나 디자이너 분야에서 특별한 재능을 가진 사람을 웹에서 찾아내도 거절당하기 일쑤였다.
'하프라이프'의 인터넷 코드를 담당한 얀 베르니에(Yahn Bernier)는 밤에는 취미로 게임을 만들고 낮에는 변리사라는 본업을 가지고 있었다. 마이크는 조지아주 애틀랜타에 사는 얀 베르니에를 설득해 그의 아내와 함께 워싱턴 주에 있는 자택에서 저녁을 함께하자며 식사에 초대했다. 얀 베르니에의 아내는 며칠 전까지만 해도 남편이 게임 제작을 취미로 삼고 있다는 사실을 몰랐다고 한다.
이렇게 유능한 개발자들이 늘어날 때마다 아직 수익이 없는 밸브의 자금줄과 직원들의 월급은 뉴웰과 해링턴 부부의 호주머니에서 빠져나갔다.
■ '하프라이프' 재개발로 인해 악화 일로를 걷게 된 자금 사정
자금 사정이 악화하고 있던 밸브에 더 큰 위기가 찾아온다. 기술자인 마이크와 뉴웰이 만들던 하프라이프의 게임 데모는 게임이라기보다는 기술 데모에 가까웠고, 플레이 테스트를 하는 사람들의 표정이 즐겁지 않다는 점을 시에라 온라인에서 지적했다. 밸브 개발자들도 이를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마이크로소프트를 드나들던 게임 개발자들은 모니카의 남편이 관여하고 있다는 사실을 아는지 모르는지, “마이크로소프트의 전 직원이 이드 소프트웨어에서 엔진을 라이선스하면 히트작을 만들 수 있다고 착각하는 것 같다"는 뒷담화도 들려왔다고 한다. 모니카에 따르면, 결국 밸브는 '하프라이프'의 코드를 모두 폐기하고 새로운 것을 다시 만들기로 결정했다.
이로 인해 '하프라이프'의 1997년 말 출시는 무산되고 1998년으로 출시 연기가 결정되었는데, 이를 계기로 시에라 온라인과의 관계도 소원해졌다고 한다.
당시 마이크로소프트는 '마이크로소프트 플라이트 시뮬레이터' 외에도 '에이지 오브 엠파이어'라는 히트작이 될 프로젝트를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동시에 개발 중단이 결정되는 프로젝트도 적지 않았다고 한다.
그런 와중에 남편이 관여한 '하프라이프'가 세간의 주목을 받게 되자, 모니카는 '두 경쟁 업체의 내막을 너무 잘 아는 사람'으로서 마이크로소프트에서 소프트웨어 마케팅을 담당하는 것에 위화감을 느끼게 되었다.
모니카도 마이크로소프트에서 주목받는 마케팅 전문가였기 때문에 어떻게든 그만두지 말라는 권유를 받았다고 한다. 하지만, 해링턴 부부는 이미 밸브 경영에 많은 돈을 투자하고 있었기 때문에 1998년 봄이 되자 마이크로소프트에서 사직하고 매각한 스톡옵션을 밸브의 경영에 활용했다.
또한, 해링턴 부부는 일뿐만 아니라 밸브 구성원들의 삶에도 어느 정도 관여하고 있었기 때문에 큰 스트레스를 받고 있었다고 한다.
성공에 안주하는 거대 기업의 마케팅과 스타트업의 마케팅은 전혀 다르다. 미디어용 자료와 웹사이트 문구를 직접 만든 모니카는 1998년 말 '하프라이프'의 출시를 앞두고 본격적인 준비에 들어갔지만, 해적판이 걱정이었다.
왜냐하면 모니카의 조카가 게임을 불법 복제하고 있는 것이 발각되었기 때문이다. 그녀의 조카는 모니카가 생일 선물로 준 돈으로 CD-ROM 복제기를 사서 불법 복제 게임을 친구들에게 나눠주고 있었다. 마이크와 밸브의 프로그래머들은 급히 '인증 시스템'을 개발하기 시작하는데, 이것이 훗날 '스팀'을 뒷받침하는 기술로 승화된다.
■ 축복받지 못한 모니카 해링턴의 분투기
퍼블리셔와의 관계가 순탄하지 못한 밸브는 인텔과의 제휴를 위해 시에라 온라인에 제출했던 'OEM 후보 버전'을 개선한다. 하지만, 시에라 온라인이 밸브의 동의 없이 '데이 원(Day One)' 버전이라는 게임 초반의 체험판을 무료로 공개해 버린다.
당연히 밸브 측은 화가 났고, 미완성 상태로 공개된 것으로 인해 평가가 떨어질 것을 우려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이것이 게이머들 사이에서 큰 화제가 되어 1998년 11월에 발매된 '하프라이프'의 대성공으로 이어졌다고 한다.
그러나 모니카의 큰 오산이었다. 그것은 모니카가 한 번도 읽어본 적이 없는, 뉴웰과 마이크가 시에라 온라인과 맺은 계약서에 있었다. 계약서에 따르면 '하프라이프'의 성공으로 밸브가 얻을 수 있는 지분은 15%에 불과했다. 만약 멕시코로 직원 여행을 떠난다고 가정했을 때 성공 보상으로 경영진에게 남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게다가 '하프라이프 3'를 시에라 온라인에서 퍼블리싱한다는 조항도 있었다고 한다.
그 결과 밸브는 'IP를 하프라이프에만 의존하지 않는' 경영을 지향하게 되었고, 포트폴리오 다변화를 통해 호주에서 MOD를 개발하던 로비 워커(Robin Walker)와 존 쿡(John Cook)을 공식 멤버로 영입해 1999년 4월에 '팀 포트리스(Team Fortress)'를 출시한다.
모니카도 스스로 기업으로서 경영의 안정을 모색하던 중 아마존을 만나게 된다. 당시 아마존은 아직 게임 사업에 뛰어들지 않았지만, 담당자로 나온 한 남성이 “예전에는 안녕히 계셨습니까?”라고 인사를 건넸다고 한다. 그 사람은 모니카가 마이크로소프트 시절 면접관 때 채용하지 않은 사람이었다. 그는 면접 때 모니카로부터 “당신의 능력이라면 최근 화제가 되는 책 온라인 판매 사업이 적합할 것 같다”는 추천을 받았고, 그 후 아마존에 취업해 담당 부서의 부사장이 되었다고 한다.
그런 관계도 고려되었는지 아마존은 이후 밸브에 '3년간 5억 달러 투자'라는 파격적인 조건을 제시했다. 하지만, 마이크와 뉴웰은 이 제안을 받아들이지 않았다고 한다. 결과적으로 밸브가 독립을 유지한 것은 큰 성공이었지만, 이 계약이 무산되면서 모니카는 어색함을 느꼈을지도 모른다.
마이크 해링턴과 모니카 해링턴은 2000년에 밸브를 그만두었다. 이에 대해 뉴웰은 해외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마이크는 다음 작품에서 실패하는 것에 대한 두려움을 느끼고 있었다”고 밝힌 바 있다.
그러나 모니카에 따르면 “두 사람 모두 번아웃(지속적인 스트레스로 인한 심신의 탈진 상태)에 빠져 있었고, 오랜 꿈이었던 보트 여행을 할 수 있는 기회가 그때밖에 없다고 생각했다”는 것이 은퇴의 이유였다고 한다. 실제로 두 사람은 23미터급 요트를 구입해 4년에 걸쳐 세계 여행을 즐겼다.
그 사이 밸브는 시에라 온라인(시에라 스튜디오)으로부터 '하프라이프' IP를 되찾아 2003년 '스팀'을, 2004년 '하프라이프 2'를 발표하며 오늘날의 밸브로 성장했다. 초창기 해링턴 부부의 고군분투가 없었다면 오늘날의 밸브는 존재하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세계 여행 후 마이크는 재단 설립과 스타트업 기업 운영에 참여했고, 모니카 역시 과거 인연으로 빌 & 멜린다 게이츠 재단의 마케팅을 맡는 등 활동의 폭을 넓혀갔지만, 2016년 부부는 이혼했다.
밸브는 2023년 11월 '하프라이프' 출시 25주년을 기념하여 '하프라이프: 25주년 다큐멘터리'라는 1시간 분량의 다큐멘터리 영상을 공개했다. 거기에는 마이크의 모습과 코멘트는 있지만, 모니카의 모습은 그림자도 보이지 않았다.
모니카는 “마이크가 없었다면 밸브는 성공하지 못했으리라는 것을 나는 알고 있다. 물론 게이브가 없었어도 성공하지 못했을 것이다. 그리고 내가 없었다면 마찬가지로 성공하지 못했을 것이라고 확신한다. 당시 상황을 모두 알고 있는 친구들은 당신이 창업 파트너였다고 말한다. 인생의 어느 시점에 나는 밸브를 위해 모든 것을 바쳤다"라고 강연을 마치면서 관객들의 큰 박수를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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