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 기자로 일하다 보면 여러 업계 관계자를 인터뷰하게 된다. 대표, 디렉터, 프로듀서 등 다양한 분야에 걸친 게임인과의 만남 속에, 가끔은 특별한 순간이 찾아온다. 바로 내가 좋아하는 작품을 만든 개발자를 직접 만나는 순간 말이다. 그때의 심정은 마치 좋아하는 뮤지션의 사인을 받는 팬의 그것과 다르지 않다.
최근 김형태 디렉터와의 만남에서 그런 특별함을 느꼈다. 그는 현재 회사의 대표이기도 하지만, 내게는 '창세기전 3'와 '마그나카르타'의 일러스트레이터이자 '블레이드 앤 소울' 아트디렉터로 기억에 남아있었다. '스텔라 블레이드' PC 버전 출시를 기념하는 공식적인 인터뷰 자리였지만, 본업을 마치고 게이머의 한 사람으로서 개발자 김형태의 사인을 받을 수 있었다.
해외, 특히 일본을 보면 스타 개발자들이 당당하게 자신을 드러내는 문화가 부럽다. 코지마 히데오는 코나미를 떠난 이후 자신이 만들고 싶은 작품을 만들며, 크리에이터로서의 철학을 거침없이 피력한다. 카미야 히데키는 그만의 개성을 바탕으로 팬들과 거침없이 소통하고, 미야모토 시게루는 닌텐도를 대표하는 인물로 오랜 시간 사랑받으며 게임의 아버지라 불린다.
이들의 공통점은 자신이 개발한 작품에 대한 투철한 자부심과 자신감이다. 단순히 상업적 성공을 위한 제품이 아니라, 자신만의 예술적 비전을 담은 작품으로 게임을 바라본다. 그래서 그들의 인터뷰는 언제나 흥미롭고, 팬들은 그들의 다음 작품을 학수고대한다.
그들 덕분에 개발자가 단순한 기술자가 아닌, 창작자로서 인정받고 주목받는 문화가 생성됐다. 기획과 아트, 기술을 넘나들며 하나의 세계를 구축하고, 그 안에 진정한 재미를 녹여낸 이들은 칭찬받고, 존경받아 마땅하다.
한국에서도 이런 개발자 스타 시스템이 자리 잡기를 바라는 마음이 크지만, 한국 게임 시장은 모바일 중심으로 재편된 지 오래다. 매출 상위권은 대부분 모바일 게임이 차지하고 있으며, 많은 게임사가 자연스레 이 흐름에 집중하고 있다. 모바일 게임은 접근성과 편의성이 높고, 언제 어디서든 즐길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하지만, 지금의 모바일 시장을 보면, 짧은 시간에 쾌감을 주고, 과금을 유도하는 구조에 매몰되어 있는 경우가 많다. 가챠 시스템, 자동 전투, 반복적인 일일 퀘스트 같은 요소들이 게임의 핵심이 되면서, 게임 본연의 재미는 뒷전으로 밀려나고 있다.
게이머들이 게임을 통해 느낄 수 있는 서사적 감동, 도전의 즐거움, 성취감 등이 희석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게임이 단순한 시간 소비 수단이나 수집 욕구를 자극하는 도구로 전락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우려스럽다.
그렇다고 PC나 콘솔 게임이 만능은 아니다. 한국에서 이런 플랫폼의 게임들이 대중적으로 큰 성공을 거두기는 여전히 어려운 상황이다. 플랫폼의 보급률, 개발 예산, 가격 부담, 유통 구조, 게임 문화의 차이 등 해결해야 할 과제가 여전히 많다.
긍정적인 변화의 조짐도 보인다. '스텔라 블레이드'의 성공은 한국에서도 콘솔 게임이 세계적으로 통할 수 있음을 증명했다. 그에 앞서 크래프톤의 '배틀그라운드', 펄어비스의 '검은사막', 넥슨게임즈의 '퍼스트 디센던트'는 한국 개발력의 잠재력을 보여준다.
무엇보다 젊은 개발자들 사이에서 창작자 정신을 중시하는 문화가 서서히 자리 잡고 있다. 인디 게임의 활성화, 게임 아카데미와 대학의 게임학과 확산, 크리에이터 지원 프로그램 등이 이런 변화를 뒷받침하고 있다. 정부 차원에서도 게임을 문화 콘텐츠로 인식하는 시각이 확산하고 있다. K-게임 글로벌화 지원, 독립 게임 개발자 육성 프로그램, 게임 문화 진흥 정책 등이 점진적으로 환경을 개선하고 있다.
결국 중요한 것은 플랫폼이 아니라 콘텐츠 자체다. 게이머들에게 진정한 재미와 감동을 줄 수 있는 게임, 플레이 후에도 오랫동안 기억에 남는 게임이 필요하다. 장르나 플랫폼을 막론하고, 개발자의 진정성과 창의성이 담긴 작품들이 더 많이 나와야 한다.
김형태 디렉터의 '스텔라 블레이드'가 국내외에서 호평을 받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상업적 계산을 넘어서, 개발자가 만들고 싶었던 게임을 정성스럽게 구현해 낸 결과물이기 때문이다.
게임 기자로서 업계를 바라보지만, 동시에 한 명의 게이머로서 좋은 작품에 대한 갈망이 있다. 한국 게임 업계에 더 많은 '개발자 김형태'가 나타나기를, 그리고 그들이 자신만의 색깔을 가진 작품들을 자신 있게 선보일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되기를 바란다. 게이머들도 단순한 소비자를 넘어서, 좋은 작품을 알아보고 응원하는 문화를 만들어 가야 할 것이다.
그래서 오늘 받은 사인은 단순한 기념품이 아니다. 내가 좋아하는 게임과 그 창작자를 직접 만났다는 증거이자, 한국 게임 산업에 대한 작은 희망의 조각이다. 대표로서가 아닌, 순수한 게임 개발자로서의 김형태를 기억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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