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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형택의 콘텐츠 이야기] 콘텐츠 네이밍이 ‘브랜드’를 잃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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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출시되는 게임들의 네이밍 트렌드는 무척 직관적이고 자극적이다. 아이콘이나 스토어의 소개 문구 역시 추상적인 세계관이나 감성적인 문구 대신, 어떻게 플레이하는지를 직접적으로 설명하는 경우가 늘고 있다.

이는 비단 게임 산업만의 현상은 아니다. 이미 웹소설이나 웹툰 시장에서는 보편화된 흐름이다. 소위 '회빙환(회귀, 빙의, 환생)'이라 불리는 장르에서는, 이야기의 핵심 설정을 제목에 그대로 노출하는 것이 대부분이다. "회귀한 ㅇㅇ가 ㅇㅇ했다", "ㅇㅇ로 환생했더니 ㅇㅇ되었다", "어느 날 ㅇㅇ가 되어버렸다" 같은 형태의 제목은 이제 너무 흔하여 더 자극적이고, 설명적인 차별화가 필요한 수준이다. 이처럼 제목이 단순하고 직관적이면, 소비자에게 콘텐츠의 핵심 설정과 맥락을 설명하는 데 매우 유리하다. 

이 현상의 근본 원인은 콘텐츠 산업이 가진 공급 대비 수요의 불균형과 흥행 산업이라는 특성에 있다. 과거에는 콘텐츠 산업의 수요와 공급이 어느 정도 균형을 이루었다. 이때는 소비자들이 '좋은 콘텐츠'를 고르기 위해 기꺼이 많은 시간과 노력을 들였다. 그리고 이 과정을 돕는 일종의 '게이트 키퍼(Gate Keeper)'가 존재했다.

소설가가 되려면 신춘문예나 문예지의 '등단'이라는 자격시험을 통과해야 했고, 만화가는 '문하생'이라는 도제식 학습 과정을 거쳐야 했다. 드라마를 만들기 위해서는 방송국의 편성을 받아내는 높은 문턱을 넘어야 했다. 이 게이트 키퍼들은 1차적으로 콘텐츠의 품질을 검증하는 역할을 했고, 때로는 막강한 권력으로 작용하기도 했다.

하지만 지금은 플랫폼의 다변화로 누구나 콘텐츠를 생산하고 유통할 수 있는 환경이 되었다. 공급은 과거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폭발적인 증가를 보였다. 소비자는 이 엄청난 양의 콘텐츠 공급 속에서 과거처럼 하나하나 정보를 찾아가며 옥석을 가릴 물리적인 시간이 부족하다.

현재의 콘텐츠 시장은 정제되고 검증된 뮤지션의 공연을 티켓을 구매해 관람하는 콘서트홀 공연보다 수많은 무명 아티스트가 경쟁하는 버스킹의 거리에 가깝다. 우리는 콘서트 티켓을 살 때, 누가 출연하는지, 시간과 장소는 어디인지, 비용은 얼마인지 꼼꼼히 확인한다. 하지만 길거리를 지나가다 마주치는 버스커의 공연은 다르다. 사전 정보가 없는 상태에서, 우리의 발걸음을 멈추게 하는 것은 익숙한 멜로디, 내가 좋아하는 장르, 혹은 인상적인 인트로 등이다.

설명형의 긴 제목은 익숙한 멜로디인지, 좋아하는 멜로디인지, 인상적인 인트로인지를 알려주는 정보 제공의 역할을 수행한다. 이런 제목은 소비자의 선택에 드는 정보 획득 과정을 극단적으로 단순화시킨다. 일단 발걸음을 멈추게 하지 못하면, 그 곡의 하이라이트가 아무리 훌륭해도 들려줄 기회조차 얻지 못한다. 지금 시장은 콘텐츠의 매력을 어필할 기회를 잡는 것 자체가 가장 큰 과제인 시장인 것이다.

그러나 이 생존 전략은 치명적인 딜레마가 있다. 바로 브랜딩(Branding)의 어려움이다.

"환생했더니 시한부 엑스트라 ㅇㅇ인데, 여주들이 나에게 집착한다" 같은 제목이 당장의 소비자의 발걸음을 멈추게 할 수는 있다. 하지만, 이 긴 설명문 자체가 하나의 고유한 브랜드로 소비자에게 각인되기는 매우 어렵다.

세계적인 인지도와 브랜드를 가진 <포켓몬스터(Pokémon)>을 대부분 알 것이다. <포켓몬>은 그 자체로 강력한 브랜드 가치를 가진다. 그러나 만약 <포켓몬>의 네이밍이 "나는 오늘도 귀여운 몬스터를 수집하러 간다"였다면 아마도 지금과 같은 거대한 브랜드 가치를 가지기는 어려웠을 것이다.

새롭게 공급되는 콘텐츠가 아무리 의미 있는 실적을 거두더라도, 브랜드화에 실패하면 일정 규모 이상의 대중성을 확보하는 데는 명확한 한계가 있다. 이는 콘텐츠의 생명력이 단발성으로 그칠 가능성이 크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이런 의미에서, 이미 시장에 성공적으로 안착한 기존 브랜드의 가치는 앞으로 더욱 높아질 수밖에 없다. 신규 IP가 강력한 브랜드로 성장하기가 과거 어느 때보다 어려워졌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미 구축된 브랜드의 관리가 더욱 중요하다. 브랜드를 처음 구축하는 것도 어렵지만, 그 브랜드가 쌓아 올린 가치와 이미지를 지키는 것은 더욱 어렵다.

최근 개인적으로 가장 기대하고 있는 브랜드는 거의 20년이 다 되어가는 엔씨소프트의 <아이온(Aion)>이다.  최근 <아이온2>의 공개된 트레일러와 플레이 영상은, 적어도 이 브랜드가 가진 고유의 가치를 잘 지켜줄 것이라는 기대를 갖게 했다. 부디 <아이온2>가 오랜 팬들의 기대에 부응하여, 잘 관리된 브랜드가 얼마나 큰 힘을 가질 수 있는지 증명하는 모범 사례가 되기를 간절히 바란다.

사진: '지스타 2025' 엔씨소프트의 신작 아이온2 부스 
사진: '지스타 2025' 엔씨소프트의 신작 아이온2 부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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