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양한 콘텐츠에서 지옥과 천국은 자주 소재로 활용된다.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영화 '콘스탄틴' 같은 경우 인간 세상은 지옥과 천국의 사이에서 아슬아슬한 줄타기가 이루어지는 공간으로 묘사된다. '단테스인페르노' 같은 게임에서는 단테의 신곡을 모티브로 하여 주인공이 저지른 죄악을 묘사하기도 한다. '데빌 메이 크라이' 나 '베요네타' 같은 게임에서는 악마와 사투를 벌이지만, 선하다고 하기 어려운 인물이 주인공이기도 하다.
많은 문학 작품이나 영화, 게임 같은 콘텐츠에서 그려지는 지옥과 천국의 모습은 시대상을 반영하며 조금씩 바뀌었다. 과거 중세 시대 문학 작품이나 회화, 조각 등에서 다루어지는 천국에 대한 묘사는 아름답고, 평화로운 모습이 주를 이뤘다. 천국에도 사회 계급이 있었고, 성인과 성직자들이 윗자리에 있었고, 일반인이 낮은 자리에 있었다. 그것이 안정적이고 평화로운 모습이라고 여겼기 때문이다. 그 시대가 그리는 천국은 정적인 공간이었다. 가난도 없고, 배고품이 없고, 죄인도 없고, 사악함도 없는 영원이 이어질 것 같은 평화의 공간이었다. 지옥은 그래서 반대의 모습이었다. 배고품에 허덕이고, 죄인에게 또 다른 이가 죄를 행하는 형벌이 이루어지는 공간이었다. 죄인에게 죄는 행하는 존재는 악마나 사탄 같은 존재로 묘사되었다. 천국은 결핍이 없는 공간, 지옥은 결핍이 가득한 공간이었다.
21세기로 넘어오면서 문학이나 미술, 영화 등의 다양한 비주얼 콘텐츠나 게임 등에서 다루어지는 천국에 대한 이미지나 표현은 과거의 모습과는 차이를 보인다. 기존의 천국의 모습이 기독 문화를 기반으로 하고 있다면, 최근 다양한 종교적 색채가 많이 반영되는 모습을 보인다. 불교적 색채나 이슬람, 도교 등 다른 종교의 콘텐츠도 반영되고 있다. 기독 신앙에서 이야기하는 일반화된 모습보다 표현하는 작가마다 개인의 생각이 반영된 천국의 모습이 그려진다. 새로운 경험, 소소한 개인의 행복을 찾을 수 있는 공간으로 묘사되거나, 기존의 정적이고 평화로운 모습보다 활기차고 행복한 역동적인 공간으로 묘사되는 경향이 생겼다. 반대로 지옥은 정적이고, 우울하고, 황폐하고 무엇이 없는 황량한 공간으로 그려지는 경우를 자주 본다. 악마 같은 존재들이 있어도 그곳은 약육강식이 지배하는 공간일 뿐 그들이 적극적으로 죄를 벌하거나 하지 않기도 한다. 천국은 결핍을 즐겁고 유쾌하게 극복할 수 있도록 새로운 무엇이 주어지는 공간 혹은 풍요로운 행복의 공간이고, 지옥은 아무것도 없는 결핍의 공간이나 허무와 고독으로 이루어진 공간으로 표현된다.
결국 천국은 정적인 평화의 공간에서 동적인 풍요의 공간으로 사람들이 바라는 희망이 반영되는 변화의 모습을 보였고, 지옥은 벌을 받는 죄악의 공간에서 버려진 결핍의 공간으로 변화하는 모습을 보였다. 이는 사회가 발전하면서 희망하는 유토피아의 사회상이 바뀌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천국과 지옥이 변하듯이 세상은 변한다. 우리는 과거에 배고품을 해결하기 위해 민주제도의 본래의 모습이 훼손되는 것을 참았다. 부족함이 많은 시대에는 배고품의 해결이 가장 당면한 문제였다. 계급 문화가 뿌리 깊이 남아있는 시대에는 공권력은 무서움의 대상이었고, 공권력의 억압을 참아온 기억은 벗어나기 힘든 족쇄가 되었다. 세상이 바뀌고 풍요의 시대가 왔다. 배고품의 해결은 더 이상 중요한 문제가 아니다. 자존감이 중요하고, 사회적 가치의 의미가 중요하고, 단절과 소외가 두려운 세상이 되었다. 이런 세상에서 자존감이 부서지고, 사회적 가치가 훼손되고, 네트워크가 통제되어 단절에 대한 두려움이 가득한 세상은 이제 현재의 대한민국에서 수용할 수 없는 지옥 같은 공간이다.
현재 우리가 바라는 민주주의 제도의 수준은 70년대 유신 독재 시절이나 80년대 군부 독재 시대와는 요구 수준이 다르다. 그 시절에 통용되는 논리와 방법은 지금 사회에서는 통용되지 않는다. '와치독' 같은 게임에서는 사회와 정부의 감시체계, 권력 집단의 프라이버시 침해, 권력 남용 등에 대한 견제를 이야기했다. '디트로이트 비컴 휴먼' 같은 게임은 인간의 인권을 넘어 인공지능의 존재로서 권리를 이야기하기도 했다. 이제 촛불집회에 소녀시대의 '다시 만난 세계'가 나오는 시대가 되었다. 아직 50년전 시대상을 가지고 있는 인물이 사회 통치자로 있는 공간이 21세기 형 지옥이 아닐까 한다. 천국도 지옥도 시대가 지나면 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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