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넥슨의 폴리 아티스트, 게임의 소리를 창조하고 담기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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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의 직업 중에는 ‘폴리 아티스트’라는 직업이 있다. 물풍선 아이템이 터지는 소리부터 갑옷이 철커덕거리는 소리까지 게임에 들어가는 모든 효과음을 만든다. 참고로 폴리라는 단어는 무성영화에 처음으로 소리를 입힌 `잭 폴리`라는 사람의 이름에서 유래했다.

국내에서는 일부 대형 게임사에서 폴리 아티스트를 운용하고 있다. 넥슨 역시 그중 한 곳이며, 여기에는 2012년부터 넥슨 게임의 효과음을 도맡아온 안용재 폴리 아티스트가 있다. 지난 7일 넥슨태그를 통해 안용재 아티스트에 대한 이야기가 공개됐다.

넥슨 안용재 폴리 아티스트(출처=넥슨태그)
넥슨 안용재 폴리 아티스트(출처=넥슨태그)

그가 음악에 빠진 건 영화학과를 들어가면서부터였다. 대학교에서 영화 편집의 기초부터 촬영 장비 조작법, 사운드 녹음 기술 등 아주 기본적인 작업들을 전부 배웠다. 여기서 그는 ‘사운드 디자인’이라는 새로운 세상을 발견한다. 다양한 상황에 필요한 소리를 직접 수집하고, 영상에 알맞게 넣는 일이다.

그는 대학교 졸업 후 바로 영화 스튜디오에 들어가 마이크를 쥔 채 촬영 현장 곳곳을 뛰어다니며 각종 소리를 담았다. 촬영장에서는 담을 수 없는 소리를 만들어 영화에 생명을 불어넣는 작업이 그의 몫이었다. 새로운 것을 만드는 게 아니라, 숨어 있는 소리를 끄집어내 결합하는 방법도 이 시기에 배울 수 있었다. 예를 들어 굵은 소금 위를 걸으면서 눈 밟는 소리를 내고, 바이올린 활을 쇠에 그어 칼 소리를 내는 것처럼 말이다.

하지만 영화 스튜디오의 현실은 녹록지 않았다. 인기가 많은 특정 장르로 영화 제작이 쏠리면서, 어떤 작품을 하더라도 비슷한 사운드를 찍어내야만 했다. 판에 박힌 듯한 소리만 계속해서 만들어 내는 작업엔 좀처럼 흥미가 붙지 않았다. 새로운 사운드 작업을 해 보고 싶어서 그는 게임이라는 길을 찾기로 결심한다. 마침 다양한 장르의 게임을 개발하는 넥슨에서 사운드 디자이너 채용 공고가 올라왔고, 넥슨에 합류한다.

그가 입사 초기 게임 사운드를 접하고 난 뒤 일본 영화 <웰컴 미스터 맥도날드>의 한 장면이 문득 떠올랐는데, 여기에선 “라디오에서는 내레이터가 ‘여기는 우주’라고 하면 그냥 우주 공간이 되는 거예요.”라는 대사가 있다. 영화 속 대사처럼 상상력이 있는 한, 게임 사운드는 무한한 가능성이 있다고 느꼈다고 한다.

출처=한국영상자료원
출처=한국영상자료원

게이머는 사운드에 담긴 분위기, 감정 교류, 상황 묘사 등을 통해 이야기의 전반적인 맥락을 파악할 수 있다. 게임에서 사운드는 내레이터이자 또 하나의 등장인물인 셈이다. 이를 위해 폴리 아티스트는 기획자가 만들어 놓은 시나리오를 깊이 이해하고, 그에 어울리는 소리를 수집하는 과정을 반복한다. 지금 이 캐릭터는 어떤 감정에 휩싸여 있는지 그 상황을 상상해 보고, 분위기가 잘 녹아들 수 있도록 사운드를 연출하는 식이다.

하지만 막상 마음먹고 소리를 수집하려고 하면 아쉬움이 늘 남았다고 한다. 그래서 그는 일상생활에서 우연히 소리를 발견할 때마다 녹음하는 습관이 생겼다. 한번은 컵라면을 먹고 빈 용기를 버리려고 꾸겼는데 타조알 깨지는 소리가 났고, 그걸 기록해 뒀다가 게임에 활용했다고 한다.

2018년 '듀랑고' 폴리 사운드 녹음 장면(출처=넥슨태그)
2018년 '듀랑고' 폴리 사운드 녹음 장면(출처=넥슨태그)

이렇게 모은 소리를 활용할 때 중요한 건, 게임 속 배경과 캐릭터 감정에 맞는 자연스러운 소리를 담는 것이다. 예를 들어 조선 시대가 배경인데 그 시대에서는 듣기 힘든 전자음이 들리는 식이다. 이 작은 실수 하나가 게이머의 경험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소리의 개연성은 게이머들의 몰입을 지켜주고, 게임 속 상상을 현실처럼 받아들이기 때문이다.

그의 작업실에는 벽돌부터 모래판, 식용유통, 글러브, 볏짚까지 온갖 잡동사니들이 어지럽게 널려 있다. 하지만 그는 틈틈이 게임 속 소리를 찾기 위해 백화점을 찾아 다양한 운동화를 신고 걸어보거나, 생활용품점에서 이것저것을 만져본다.

넥슨 안용재 폴리 아티스트(출처=넥슨태그)
넥슨 안용재 폴리 아티스트(출처=넥슨태그)

뿐만 아니라 회사 분리 수거함에 가서 부서진 의자나 사무용품을 가져와 소리를 들어보고, 퇴근길 지하철에서도 귀를 열고 소리에 집중한다. 이런 노력으로 ‘프라시아 전기’에서 등장하는 갑옷 소리는 대형 식용유 통으로, 가을 갈대 소리는 낙엽을 주워 소리를 만들었다.

폴리 아티스트로 지난 12년 동안 수십여 개가 넘는 프로젝트에 참여한 그는 캐주얼 게임에서는 귀여운 효과음에 주로 쓰이는 자신만의 도구를 창조했고, 전투 게임에서는 진흙, 눈밭 등 환경적인 요소를 고려한 발걸음 소리와 칼 소리 등을 연구하기 위해 노력했다.

여러 시도를 하고 마음에 드는 사운드를 얻지 못할 땐 말할 수 없이 힘들고 답답하다고 한다. 100개의 소리를 만들었을 때 정작 사용할 수 있는 건 10개가 채 안 되며, 정확한 매뉴얼이 없이 매번 다양한 도구를 사용해 창작해야 하는 직업이기 때문에 그 고뇌가 예술가 못지않다. 그러나 그는 게이머들이 쉽게 알아채지 못하는 소리까지 최선을 다해 제작하는 게 의무이자 책임이라고 생각한다.

AI 기술의 발전으로 폴리 아티스트의 작업이 더 수월해질 수도 있다. 예를 들어 특정 소리를 데이터베이스에서 빠르게 검색하거나 복잡한 소리를 합성하는 작업은 AI의 도움을 받을 수 있다. 그러나 사람의 창의성과 감각은 아직까지 기술로 대체하기 힘든 영역인 만큼, 폴리 아티스트의 역할이 여전히 중요하다. 그는 기술과 예술을 융합해 청각적 몰입감을 높이는 것을 폴리 사운드의 핵심 과제 중 하나로 꼽았다.

훌륭한 폴리 사운드의 공통점은 ‘유저들이 귀를 의심하지 않도록 자연스러운 소리’가 담겨 있다는 것, 이것이 그가 지금까지 소리를 찾아 다니면서 느낀 것이라고 한다. 그리고 현재 그는 ‘낙원: 라스트 파라다이스’ 프로젝트에서 사운드 후반부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이 게임은 좀비가 창궐해 폐허가 된 서울을 탈출하는 서바이벌 장르다. 그의 손을 거쳐 게임 속에서 나오는 긴장감 넘치는 사운드가 등장할 예정이다.

그는 폴리 아티스트로서 “아주 작은 소리의 차이로 넥슨의 모든 게임이 게이머들에게 조금이라도 더 사랑받을 수 있다면 더 바랄 게 없을 거 같다”는 목표를 밝혔다. 향후 그는 일상의 다양한 소리를 차곡차곡 열심히 쌓아갈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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