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게임사들이 좁은 내수 시장의 한계를 넘어서기 위해 글로벌 시장을 정조준하고 있다. 과거에는 국내 출시 후 성과를 확인한 뒤 해외에 진출하는 방식이 일반적이었다면, 최근에는 ▲글로벌 동시 출시 ▲지역별 선행 출시 ▲현지 퍼블리셔와 협업 등 보다 다양한 방식으로 세계 시장에 접근하는 추세다.
이러한 흐름 속에서 ‘현지화’ 전략도 진화하고 있다. 단순한 언어 번역을 넘어, 지역별 게임 문화와 소비자 특성, 심지어 종교적 배경까지 고려한 콘텐츠 설계와 운영 방안이 새로운 표준으로 자리 잡고 있다.
중국, 일본, 중화권 등 아시아 주요 시장에서 현지 게임들과의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수출용 한국 게임’이 아닌 ‘현지에 최적화된 K-게임’으로의 전환이 생존을 위한 필수 과제로 떠오르고 있다.
■ 니케, 중국 시장 공략의 모범 사례로 부상
시프트업의 미소녀 슈팅 RPG ‘승리의 여신: 니케(이하 니케)’는 지난 5월 22일 중국 정식 출시와 동시에 시장을 빠르게 장악하며, 현지화 전략의 성공 사례로 주목받고 있다.
출시 첫날에만 탭탭에서 46만, 빌리빌리에서 38만 다운로드를 기록하며 양대 플랫폼 인기 1위를 차지했고, 애플 앱스토어에서는 인기 1위, 매출 15위로 출발해 이후에도 꾸준히 상위권을 유지하고 있다.
니케의 중국 진출은 오랜 시간 판호 취득 문제로 지연되어 왔다. 그러나 그만큼의 준비 기간을 통해 시프트업은 중국 유저 맞춤형 콘텐츠와 운영 전략을 설계했다. 특히 ▲중국어 전용 더빙 ▲로딩 속도 개선 ▲초기부터 25칸 제공된 싱크로 디바이스와 등록 및 해제 시 딜레이 제거 등은 중국 서버에만 적용된 현지 최적화 기능이다. 이 가운데 로딩 속도 개선은 글로벌 서버에도 아직 도입되지 않은 상태다.
중국 퍼블리싱은 텐센트가 맡았으며, 자사의 유통 및 마케팅 인프라를 총동원해 시장 진입 장벽을 최소화했다. 시프트업은 고유의 스토리텔링, 아트 스타일, OST 등의 경쟁력에 더해 철저한 지역 맞춤형 전략을 결합함으로써, 중국 내 ‘고퀄리티 외산 게임’의 기준을 다시 썼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 레이븐2, 일본 시장의 문법을 새롭게 정의하다
넷마블의 ‘레이븐2’는 5월 28일 일본 정식 출시를 앞두고, 사전 마케팅 차원에서 ‘고대성채 인플루언서 체험회’를 개최했다. 이는 일본 유저들에게 핵심 PvP 콘텐츠인 고대성채 시스템을 직접 체험하게 하는 방식으로, 일본 시장에 대한 기존 고정관념을 재검증하는 기회이기도 했다.
업계에서는 일본 유저들이 경쟁 콘텐츠에 대한 거부감이 높다는 인식이 존재하지만, 이번 테스트에서는 달랐다. 인플루언서 및 현지 참여자들은 ‘과도한 경쟁’에 대한 거부감이지, 경쟁 자체를 기피하지는 않는다는 점을 보여주었다. 이를 통해 넷마블은 일본 유저 성향에 맞춘 콘텐츠 설계 및 커뮤니티 관리 방안을 구체화할 수 있었다.
정식 출시와 동시에 오픈되는 통합 서버 ‘피아’는 일본뿐 아니라 한국, 대만, 홍콩, 마카오 등 5개 지역 유저를 하나의 월드에서 만나게 하는 실험적 시도다. 피아는 문화권별 유사성을 기반으로 설계되었으며, ▲실시간 번역 기능 ▲시차 최소화 설계 등을 통해 ‘다국가, 다언어, 동시간대 플레이’의 가능성을 시험하게 된다.
여기에 일본 신화를 차용한 신규 사역마 ‘백호’, 컬렉션 달성 시스템, 밸런스 커스터마이징 등도 포함되며, 일본 시장 특화 콘텐츠로서의 무게를 더하고 있다.
■ 리니지W, 대만 유저의 문화 코드에 깊이 침투
엔씨소프트의 글로벌 MMORPG ‘리니지W’는 대만 시장에서 새로운 현지화 접근을 시도하며 성과를 거두고 있다. 5월 24일 대만 구글플레이 매출 1위를 기록한 '리니지W'는 불교와 도교 등 동양 종교 철학을 게임 세계관에 통합함으로써 대만 유저들의 문화적 공감대를 공략했다.
공식 방송 ‘스튜디오W’는 1년 만에 대만 현지에서 진행해 대만 유저들과 오프라인으로 소통하는 자리를 가졌다. 방송에서 소개된 신규 클래스 ‘나찰’은 불교의 상징성과 세계관을 차용했으며, 신규 아레나 던전 ‘심연’의 보스 ‘라트모르’는 다면(多面)의 형상을 통해 인도 신화 속 신격인 브라흐마를 연상시키는 디자인으로 주목받았다. 나찰 캐릭터의 심볼은 불교 만다라 문양을 기반으로 디자인되어, 종교적 이미지를 은유적으로 해석했다는 점에서 대만 유저들에게 긍정적인 반응을 얻었다.
이는 MMORPG 장르에서 보기 드문 문화적 융합 사례로, 게임 디자인과 세계관 구성에 있어 ‘문화 감수성’이 어떻게 현지 시장의 공감을 이끌어낼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대표적 사례로 평가된다.
■ '글로벌 네이티브’ 게임 개발의 시대
최근 한국 게임들은 단순히 기존 게임을 ‘현지화’하는 수준에서 벗어나, 초기 기획 단계부터 글로벌 버전의 다중 전개를 고려한 ‘글로벌 네이티브’ 개발 철학으로 전환되고 있다. 언어, 문화, 시간대, 플랫폼별 UX 차이를 모두 감안한 설계는, 글로벌 시장에서의 성공 가능성을 크게 높인다.
스토리텔링, 캐릭터 디자인, OST 등 한국 게임이 갖춘 핵심 경쟁력은 여전히 유효하다. 여기에 지역별 특성과 소비자 행태를 반영한 고도화된 서비스 전략이 더해지며, K-게임의 글로벌 확장성은 새로운 국면을 맞이하고 있다.
결국, 한국 게임 산업의 다음 경쟁력은 기술과 창의성에 더해 ‘문화 기술’을 얼마나 정교하게 구현하느냐에 달려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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