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전 중국 상해 여행을 다녀왔다. 상해의 명소인 와이탄과 예원은 물론, 짬을 내 방문한 곳 가운데 하나는 바로 상해 아트센터 부근의 메르세데스 벤츠 아레나였다.
이 장소를 방문한 것에는 이유가 있다. 2025년 롤드컵 결승이 열린 중국 청두 Dong’an Lake 스포츠공원과 더불어, 준결승이 열렸던 장소이기 때문이다. 이 장소에서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T1과 KT가 각각 상대방 겪고 결승진출을 확정했던 역사적인 장소이기도 해서 상해를 방문한 김에 이곳을 들렸다.
우주 비행선을 연상시키는 멋진 외관에, 무려 18,000석 규모인 이곳은 쇼핑몰, 영화관, 스케이트장 등 복합 엔터테인먼트 단지다. 무엇보다 360도 관람 가능한 중앙 LED 및 VIP 스위트룸 완비하고 있어, 다양한 행사는 물론 LPL(중국 롤 리그) 결승 및 롤드컵 등 메가 이벤트 개최한 전적이 있다.
T1의 우승으로 끝난 이번 롤드컵을 통해, 명실상부 대한민국은 이스포츠의 종주국이자, 세계 최강의 실력을 갖춘 이스포츠의 심장이라는 점을 다시 한 번 입증했다. 하지만 화려한 트로피와 선수들의 명성에 가려진 우리의 현실은 씁쓸하기 그지없다. 세계 최고의 소프트웨어, 즉 선수와 콘텐츠를 가졌으면서도, 이를 담아낼 하드웨어인 경기장은 여전히 초라한 수준이기 때문이다.
좁아터진 현실, 빌려 쓰는 신세
현재 국내 대표 이스포츠 경기장인 롤파크(LoL Park)의 수용 인원은 고작 400~500석 남짓이다. 정규 시즌조차 티켓 구하기가 하늘의 별 따기인 것은 물론, 조금이라도 큰 경기가 열리면 체육관이나 야구장을 빌려야 하는 것이 현실이다.
문제는 체육관은 음향이 울리고, 야구장은 스크린 시야각이 나오지 않는다. 게임 관람에 최적화된 설계가 아니기 때문이다. 중국이 1만 석 규모의 전용 경기장을 짓고, 미국과 유럽이 최첨단 아레나에서 팬들을 맞이할 때, 우리는 여전히 임시방편으로 전선과 랜선을 연결하고 스크린을 설치하고 있다.
제대로 된 대형 이스포츠 전용 경기장의 부재는 단순한 좌석 부족의 문제가 아니다. 이는 산업의 확장성을 가로막는 족쇄다. 해외 팬들은 페이커의 나라에 와서 경기를 보고 싶어 하지만, 표를 구할 수 없어 발길을 돌린다. 그러다보니 수익 구조의 한계가 생긴다. 대규모 관중을 통한 입장 수익, 굿즈 판매, 식음료 매출 등 구단의 자생력을 키울 기회가 원천적으로 차단된다.
상하이의 메르세데스-벤츠 아레나나 청두의 공연예술센터를 보라. 그들은 경기장을 랜드마크로 만들어 전 세계의 게이머들을 불러 모으고, 그 주변 상권을 부흥시킨다. 정말로 부러운 마음이 들 수 밖에 없는 환경이었다. 황푸강 바로 옆에 자리잡은 엄청난 부지에, 멋진 디자인의 경기장은, 경기가 없더라도 이곳의 풍광만으로도 즐거움이 느껴지는 공간이었다.
정부와 지자체, 그리고 대기업은 이제 응답해야 한다. 수만 명이 운집해 한목소리로 응원할 수 있는, 게임의 사운드가 심장을 울릴 수 있는 이스포츠 전용 아레나 건립은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과제다.
BTS가 공연할 전문 공연장이 필요하듯, 페이커와 제우스가 활약할 전용 경기장이 필요하다. 언제까지 세계 최강의 선수들을 동네 PC방의 확장판 같은 곳이나, 남의 집이라 할 수 있는 체육관을 전전하며 경기하게 할 것인가.
이스포츠 종주국이라는 타이틀은 과거의 영광이 아니라 미래의 투자가 동반될 때 지켜질 수 있다. 이제 우리에게도 그 열기를 온전히 담아낼, 세계가 부러워할 만한 우리만의 성전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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