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전 삼성전자가 선보인 확장현실(XR) 기기, 갤럭시 XR에 대한 기대감이 고조되고 있다. 애플의 비전 프로가 쏘아 올린 공간 컴퓨팅의 화두에 삼성·구글·퀄컴이라는 안드로이드 진영의 거물들이 연합군을 결성해 맞불을 놓는 형국이다. 특히 게이머들에게 갤럭시 XR은 단순한 전자기기를 넘어, 게임의 경험을 송두리째 바꿀 새로운 '무기'로 인식되고 있다.
하지만 화려한 하드웨어 스펙 뒤에는 여전히 짙은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다. 바로 이를 제대로 써먹을 킬러 콘텐츠(Killer Content)의 부재라는 해묵은 난제다.
◼압도적 하드웨어, 그러나 그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삼성전자의 하드웨어 제조 역량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 고해상도 디스플레이, 강력한 모바일 프로세서, 그리고 갤럭시 생태계와의 연동성은 경쟁자들을 긴장시키기에 충분하다. 하드웨어라는 그릇은 이미 최고 수준으로 빚어지고 있다는 뜻이다.
문제는 이 그릇에 무엇을 담느냐다. 과거 수많은 VR/AR 기기들이 실패한 원인은 기술력이 부족해서가 아니었다. 소비자가 굳이 무거운 기기를 머리에 쓰고, 비싼 비용을 지불하면서까지 즐겨야 할 이유를 증명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애플 비전 프로 역시 출시 초기 혁신적인 기술로 찬사를 받았지만, "그래서 이걸로 뭘 할 건데?"라는 질문 앞에서는 아직 명쾌한 답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특히 게임 분야에서는 더욱 그렇다.
◼ 게이머는 '스펙'이 아니라 '재미'를 산다
게임 시장의 역사는 하드웨어가 아닌 소프트웨어가 승패를 결정지었음을 증명한다. 닌텐도 스위치가 4K 해상도를 지원하지 않아도 불티나게 팔린 이유는 '젤다의 전설'과 '마리오'가 있었기 때문이다. 반면, 최고의 성능을 자랑했던 수많은 콘솔들이 잊힌 이유는 할 만한 게임이 없었기 때문이다.
갤럭시 XR이 게임 도구로서 성공하려면, 단순히 기존의 PC나 모바일 게임을 가상 화면에 띄워주는 '대형 모니터' 역할에 그쳐서는 안 된다. 오직 갤럭시 XR에서만 경험할 수 있는 독점적이고 압도적인 게임 경험이 필요하다. 발로 뛰며 몬스터를 잡거나, 고개를 돌려 적을 피하는 등 XR 기기의 특성을 100% 활용한, 그러면서도 깊이 있는 서사를 가진 AAA급 타이틀이 필수적이다.
그나마 다행스러운 점은 삼성이 구글과 손을 잡았다는 것이다. 안드로이드라는 거대한 OS 생태계는 게임 개발자들에게 친숙한 환경을 제공할 수 있다. 하지만 이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삼성은 하드웨어 제조사를 넘어, 적극적으로 게임 개발사들과 협력하고 투자를 아끼지 말아야 한다.
갤럭시 XR은 분명 매력적인 하드웨어다. 그러나 소비자의 지갑을 여는 것은 차가운 기계가 아니라, 그 기계가 선사하는 뜨거운 경험이다. 삼성전자가 세계 최고의 XR 기기를 만드는 것을 넘어, 세계 최고의 XR 경험을 팔 준비가 되었는지 자문해 볼 시점이다.
성공의 열쇠는 공장이 아니라, 게임 엔진 속에 있다. 이제 화려한 무대는 준비됐다. 관객들을 열광시킬 주연 배우인 킬러 콘텐츠가 등판할 차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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