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여백
HOME 오피니언 기자수첩
[기자수첩] 바다이야기로 시작된 해묵은 사전심의, 이제는 바꾸자

최근 며칠간, 게임계는 게임물관리위원회(이하 게임위)의 스팀 게임 차단설에 휩싸였다. 게임위가 국내에서 게임 유통의 의지가 있는 유명 게임들에 대해 심의를 받을 것을 통보했고, 결국 스팀의 모든 게임들이 국내 서비스가 불가능해질 것이라는 소문이었다. 일부 매체는 게임위에 확인 절차조차 거치지 않고 기사를 써서 뿌리기에 바빴다.

하지만 결론부터 말하면, 오해였다. 이전까지는 해외 게임이 유통되려면 국내 사업자를 통해 진행되어야 했지만, 최근 모든 등급 게임에 대한 해외 직접 심의 절차가 시범 운영되기 시작했고, 이를 스팀에 안내한 것이 전부였다. 그리고 스팀이 일부 게임에 이 사실을 안내했고, 그것이 와전되면서 논란이 커진 것이다.

게임산업진흥에 관한 법률에 따르면 심의를 통해 게임물 등급을 받지 않은 게임을 제공하거나 유통하지 못하도록 되어있다. 이를 어기면 2년 이하의 징역 또는 2천만원 이하의 벌금형에 처해진다.

국내에서 게임을 서비스하려면 게임위의 심의를 받아 등급을 받거나, 국제등급분류연합(IARC)에 가입된 기관을 통해 심의를 받거나, 게임위로부터 자체등급분류사업자로 선정된 구글, 애플, SIEK, 한국마이크로소프트, 삼성전자, 오큘러스, 원스토어, 카카오게임즈 등을 통해 등급을 받아야 한다.

하지만 PC 게임 유통 플랫폼인 스팀의 경우 아직 자체등급분류사업자로 지정되지 않았다. 게다가 스팀에는 내부 등급분류 시스템이 없고, 스팀을 통해 하루에 수십 개의 게임이 새롭게 등록되는 만큼 모든 게임을 심의한다는 것이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부분이다. 이 얘기는 게임위가 몇 년간 스팀을 좋게 말하면 봐주고 있었고, 나쁘게 말하면 특혜를 주고 있는 상황이었다.

이는 과거 주전자닷컴 사태 때 워낙 큰 파문이 일었기에 전면적인 단속보다는 점진적인 접근을 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게임위 입장에서는 최대한 보수적으로 자신들의 임무를 수행하고 있는 셈인데, 문제는 정당하게 심의를 받은 국내 게임사에 대한 역차별이 될 수 있는 상황이다.

결국 이 모든 논란이 벌어진 핵심은 결국 앞서 언급한 게임산업진흥법에 명시된 "게임물 등급을 받지 않은 게임을 제공하거나 유통하지 못한다"는 해묵은 법안 때문이다.

슬롯머신의 유사 게임을 전체이용가로 신청한 뒤, 결과에 따라 상품권을 지급하고 이를 별도의 환전소에서 현금화하는 방식으로 운영하는 게임들의 사후관리와 상품권 정책 추진 과정에서 총체적 부실과 파행이 드러난 2006년 '바다이야기' 사태가 벌어지면서 추가된 개정안이다.

그에 따라 그 시기 이후 국내에서 제공되는 모든 게임들은 반드시 사전심의를 거친 뒤 등급을 받아야 하며, 그 외의 게임들은 모두 불법 게임 취급을 받고 있다.

그나마 헌법재판소로부터 영상물에 대한 사전심의가 위헌이라는 판결을 받고 2000년 중반부터 민간 자율심의 이양에 대한 논의가 지속된 끝에, 대부분의 게임 심의가 2013년 게임문화재단이 설립한 게임콘텐츠등급분류위원회와 자체등급분류사업자 등 민간으로 넘어가긴 했다.

하지만, 아직 대부분의 아케이드 게임과 성인 등급의 PC 게임 및 온라인 게임, 콘솔 게임 등은 게임위를 통한 사전심의가 이뤄지고 있는 상황이다. 정부가 우려하는 게임과 관련한 사행성 요소를 막아야 하기 때문이다.

해외에서는 슬롯머신 자체를 게임 문화로 받아들이고 있지만, 현재 국내에서는 이 요소의 활용 자체가 사행성 조장으로 취급되고 있다. 최근 논란이 되고 있는 확률형 아이템을 제외하고는 대다수 게임들의 핵심 게임성 자체는 건전하다. 결국 그 요소를 안 좋은 방향으로 활용해 부당한 이득을 취하는 자들의 잘못이 큼에도, 다른 게임들까지 사전심의의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여기에 더해, 현재 정부 주도의 게임 사전심의를 진행하는 나라는 중국을 제외하고는 한국밖에 없는 상황이다. 법적 효력을 갖고 있는 강력한 규제 사항이면서 행정 절차는 까다롭고, 일관된 비용 정책이 적용되어 중소 게임사, 특히 인디 게임 개발자에게 한국의 등급분류 정책은 그 자체가 부담이다.

반면 미국, 일본, 유럽 등 게임 선진국에서는 모두 정부 주도가 아닌 민간 주도 심의 정책을 운영하고 있다. 그럼에도 그들에게서 바다이야기 사태같은 일은 벌어지지 않고 있다. 게임은 글로벌 콘텐츠이지만 게임의 심의 정책 만큼은 갈라파고스 꼴을 면치 못하고 있는 것이다.

그나마 최근 정부가 게임산업 진흥계획을 발표하면서 심의 대상 기준을 플랫폼이 아닌 콘텐츠 중심으로 변경하고 자율 등급표시제 도입과 자체등급분류 사업자 조건 완화, 심의 소요기간 단축 등 여러가지 규제 완화 대책을 발표했다. 하지만 이 부분도 결국 법적 사전심의 제도는 그대로 안고 가는 것을 기준으로 삼고 있다.

이제는 바꿔야 할 때다. 해묵은 게임산업진흥법을 개정해 사전심의의 법적 의무를 해제해야 한다. 따라서 게임의 등급분류 권한 자체는 민간에 이양하면서 사전심의의 법적 의무는 없애고 해외 심의기관에서 받은 등급을 국내에도 반영될 수 있는 조치도 필요하다. 법적 의무는 덜어내는 대신, 이를 위반했을 때는 플랫폼이 게임을 일시적으로 내리는 등의 제재 수위를 높이는 부분도 필요하다.

무엇보다 과거와 달리 소비자끼리의 커뮤니케이션이 활발해져 소비자 자체가 감시자가 되고 있고 문제가 되는 게임은 비난을 받을뿐더러, 그렇게 됐을 때 타격이 큰 만큼 업체들의 자정 작용이 활발해지게 된다. 이렇게 사전심의의 법적 의무가 사라지면 자연스럽게 법적으로 국내 게임물사업자로 등록되어 있어야만 심의를 요청할 수 있는 부분도 사라지게 될 것이다.

헌법재판소는 지난 1996년 영화와 음반, 2008년 TV 광고에 대한 사전 심의제도에 대해 위헌 판결을 내렸다. 심지어 2015년에는 의료광고, 2018년에는 건강기능식품 광고의 사전검열도 위헌 판결이 나왔다. 그리고 2020년이 되었지만 4차산업시대의 융합 콘텐츠인 게임은 아직도 사전 심의제도에 묶여있다. 이제는 해묵은 법에 메스를 댈 때가 왔다.

박상범 기자  ytterbia@gamevu.co.kr

<저작권자 © 게임뷰,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박상범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icon인기기사
기사 댓글 0
전체보기
첫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여백
여백
여백
여백
Back to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