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가을에는 일렉트로닉 아츠(EA)의 '배틀필드 6'과 액티비전의 '콜 오브 듀티: 블랙 옵스 7'이라는 AAA급 작품이 출시될 예정이다. 인기 FPS 프랜차이즈 최신작이 4년 만에 격돌한다는 소식에 게이머 커뮤니티는 열광하고 있지만, 최근 밀리터리 FPS에 대한 한 가지 논쟁을 자주 접하게 된다. 이번에는 '슬롭의 시대'라는 키워드를 중심으로 게임 트렌드를 살펴보자.
■ 2025년, '밀리터리 FPS 전쟁'이 다시 시작된다!
올해는 오랜만에 EA의 '배틀필드 6'(10월 10일)과 액티비전의 '콜 오브 듀티: 블랙 옵스 7'(11월 14일)이라는, 지금까지 20년 이상 게임 시장을 이끌어온 두 프랜차이즈의 최신작이 동시에 출시된다. 배틀필드 신작은 '배틀필드 2042' 이후로 무려 4년 만에 등장해 양 시리즈가 정면으로 격돌하는 형국이라 게이머 커뮤니티는 크게 들썩이고 있다.
밀리터리 FPS라는 장르는 공식적으로는 일반화되어 있지 않으며, '전술 FPS'(전술 슈터)가 정확한 표현이다. 하지만, 일본에서는 '전쟁물' 등의 표현도 있기 때문에, '밀리터리' 쪽이 게임 내용을 파악하기에는 더 적합할지도 모른다.
첫 작품인 '배틀필드 1942'가 출시된 것은 2002년, '콜 오브 듀티'는 2003년에 등장했지만, 당연히 그 이전에도 전술 슈터라는 장르가 존재했다.
'배틀필드 1942'가 등장했을 당시 일본에서의 영향력은 컸다. 반면 후발 주자였던 '콜 오브 듀티' 시리즈는 콘솔 기기 출시가 중심이었고(이 또한 선견지명이라 할 수 있겠지만), 일본어화 되지 않은 작품도 있어 인기는 '배틀필드' 쪽에 기울어져 있었다.
그 형세가 역전된 것은 EA 다이스가 프로스트바이트 엔진(1.0)을 사용해 개발한 '배틀필드: 배드 컴퍼니'(2008년)가 출시되고, '콜 오브 듀티: 모던 워페어 2'(2009년)나 '콜 오브 듀티: 블랙 옵스'(2010년)가 부상해 온 시점부터가 아닐까 싶다. '콜 오브 듀티: 모던 워페어 2'는 '그랜드 테프트 오토 4'(2008년)가 세운 기록을 깨고, 5일간의 글로벌 판매액이 5억 5천만 달러라는 히트를 기록했다.
이후의 경위는 생략하겠지만, 10년 이상 독주 상태였던 ‘콜 오브 듀티'의 평가는 최근 들어 하락세라고 할 수 있다. 매출이나 접속자 수로는 나타나지 않지만, 게이머 커뮤니티에서 '게임플레이 외의’ 한 가지 화제를 중심으로 '배틀필드 6'의 게임 정보가 공식 공개된 8월 1일부터 뜨겁게 달아오르고 있는 모양이다.
PC Gamer의 7월 24일자 기사에서 ‘Slop Era’(슬롭 시대)라는 키워드를 사용해 최근 '콜 오브 듀티' 시리즈를 비판했기 때문이다.
'슬롭(Slop)'은 16~17세기 영국에서 선원들이 입던 헐렁한 바지 등을 가리키는 말로 사용되었으며, 해운 업계에서는 '선내에서 판매되는 기성복이나 잡역복'이라는 의미를 지녔다.
19세기 산업화 이후 ‘슬롭 무역(slop trade)'으로 양산된 저가 기성복을 가리키는 말로 확산했으며, 그 어감으로 '싸구려’, '품질이 낮은 기성품'이라는 뉘앙스가 정착되었다고 한다. 현대 소비사회에서는 타사 인기 상품의 복제품이나 안이한 협업 상품(예: 패스트푸드점 어린이 세트에 딸려 나오는 장난감)을 묘사하는 데 사용되고 있다.
특히 현재는 AI에 의한 디지털 아트나 음악이 양산되면서 'AI 슬롭'이라는 용어도 정착되었다. 엔터테인먼트 산업에서도 비슷한 팝송이나, 언뜻 보기엔 어떤 작품인지 구분하기 어려운 할리우드 영화 등도 '슬롭'으로 표현되는 경우가 많다.
■ '슬롭의 시대'에 진저리가 난 게이머들
PC Gamer가 말하는 ‘슬롭의 시대'는 '콜 오브 듀티'뿐만 아니라 '포트나이트’ 등에도 적용되며 게임 업계에도 확산한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올해 들어 밸브가 스팀에서 판매하는 게임의 AI 활용에 관한 공개 의무화라는 규칙 개정을 단행하면서, '콜 오브 듀티: 블랙 옵스 6'에서 액티비전이 AI를 통한 콘텐츠 제작을 인정한 사실을 콜 오브 듀티 정보 사이트인 Charlie Intel이 보도했다. 그해 말 출시된 ‘산타클로스 좀비’ 등 생생한 프로 아티스트라면 있을 수 없는 실수는 당시부터 화제가 되었지만, 지금까지의 '슬롭'한 콘텐츠의 이유가 공식적으로 확인된 셈이다.
게다가 최근에는 '틴에이저 뮤턴트 닌자 터틀즈', 화려한 의상으로 유명한 래퍼 니키 미나즈, 나아가 '비비스와 버트헤드' 등 ‘전술 슈터’ 세계관과는 크게 동떨어진 DLC를 연달아 출시했다.
DLC는 일반적으로 설치 기반의 10~20% 정도의 유저가 구매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따라서 라이브 서비스에서는 그 비율을 전제로 개발 및 판매 계획이 수립된다. 캐릭터 아트나 무기 스킨은 AI로도 생산 가능하지만, 팬을 끌어모으는 시즌 이벤트나 협업 대상 IP는 그리 많지 않다. 결과적으로 게임 아트가 '슬롭'이라 불리는 것은, 나머지 80% 이상의 다수에게 눈엣가시 같은 존재가 되어 상업적으로도 성립하기 어려워지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이러한 게이머 커뮤니티의 민감한 의식 변화를 먼저 읽어낸 것은 일찍부터 핵심 커뮤니티를 대상으로 테스트를 계속하며 피드백을 수집해 온 배틀필드 스튜디오였다. 제작 발표 이벤트에서 개발자들은 ‘베이스드’(based/자신의 진지에 발을 붙이고 현실을 직시하는 것)나 ‘피트 온 그라운드’(feet on ground/현실에 발을 디디고 있다는 의미) 같은 단어와 관용구를 반복하며 “전술 슈터의 영역을 넘어서는, 터무니없는 아트는 사용하지 않겠다”라고 강조했다. 즉, 과도한 슬롭 사용에 지친 핵심 유저층을 공략한다고 '배틀필드 6'는 선수를 쳤다.
액티비전은 이러한 여론이 고조되는 가운데, 게임스컴 2025를 맞아 '콜 오브 듀티: 블랙 옵스 7'의 11월 14일 발매를 게임 내용 상세 정보와 함께 발표했으나, 그 반응(사전 예약)은 결코 좋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콜 오브 듀티' 공식 사이트의 8월 26일자 커뮤니티 업데이트에서는, '블랙 옵스 6'의 오퍼레이터, 오퍼레이터 스킨, 웨폰은 '블랙 옵스 7'로 이관되지 않는다는 점(더블 XP 토큰 등 일부는 제외)을 명확히 밝혔다. "'블랙 옵스 7'의 번들과 아이템은 블랙 옵스의 정체성에 맞춰 제작됩니다. 여러분의 피드백을 진지하게 받아들이고 있으며, 몰입감 넘치는 콜 오브 듀티의 핵심 경험을 위해 더 나은 밸런스를 제공해야 합니다"라고 기술되어 있다.
또한, 원래 발표 후 2주 후를 예정했던 트레이아크가 담당하는 좀비 모드 상세 공개는 당분간 연기되었으나, 버스 운전사 TEDD가 로봇 같은 외모로 복귀한다는 점이 발표되었다. 추측에 불과하지만, 지나치게 과장된 부분이 급히 ‘더 현실감 있는’ 게임으로 재구성되고 있는 것 같다는 것이 많은 게이머 커뮤니티의 시각이다. 액티비전 역시 '슬롭 비판'을 받아들여 본래의 전술 슈팅 게임의 정통성으로 방향을 수정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물론, 많은 FPS 팬은 어느 게임이든 즐기며 플레이하거나, 결국 마음에 드는 플레이 동료가 있는 커뮤니티에서 활동하면 되므로, '배틀필드파 VS 콜옵파'로 나누어 다툴 필요는 없다. 하지만 코어 게이머들의 솔직한 의견이 게임 콘텐츠나 게임 비즈니스의 방향성을 개선하는 데 도움이 되는 것도 사실이다.
이 ‘슬롭’ 논쟁을 계기로 벌어진 '밀리터리 FPS 전쟁'은 어떻게 결말이 날까. 이 논쟁에는 예전처럼 커뮤니티의 활력이 느껴지고, 구경꾼 기분이지만 그 결말이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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