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은 종합예술 같은 것이라 사람의 감성을 움직여야 한다. 숫자나 데이터로만 접근하면 실패할 수밖에 없다."
2002년부터 일본 게임 시장에서 22년간 조용히 활동해온 김진용 컴투스 재팬 대표가 처음으로 언론 앞에 선 자리에서 한 말이다. 그는 이번 인터뷰가 "안 맞는 옷을 입은 느낌"이라고 솔직하게 털어놨지만, 일본 시장에 대한 깊이 있는 통찰과 철학을 가감 없이 공개했다.
김 대표는 일본 특유의 문화적 차이를 이해하는 것이 성공의 핵심이라고 강조했다. "일본은 문화적으로 '이럴 것 같은데'라는 게 사실은 그렇지 않은 요소들이 상당히 많다"며 "단순한 번역이 아닌, 일본 유저들이 위화감 없이 받아들일 수 있는 언어로 작업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설명했다.
특히 한국과 일본 게이머들의 성향 차이에 대한 그의 분석이 눈에 띈다. 한국 콘텐츠가 '분노와 경쟁'의 감성을 자극한다면, 일본은 '수집과 자기 만족', 그리고 '함께 밀어주는 문화'가 더 강하다는 것이다. 이런 문화적 이해를 바탕으로 '스타시드: 아스니아 트리거'(이하 스타시드)를 일본 출시할 때는 "외형적으로 보이는 부분 말고는 다 바꿨다"고 할 정도로 대폭 현지화했다.
현재 컴투스 재팬은 '서머너즈 워' 시리즈로 쌓은 수집형 RPG 노하우, '프로야구 라이징'의 스포츠 게임 경험, 그리고 스타시드를 통한 서브컬처 장르 도전이라는 세 축으로 일본 시장을 공략하고 있다. 여기에 화제의 애니메이션 IP인 '도원암귀: 크림슨 인페르노'까지 더해져 다각화된 포트폴리오를 완성했다.
김 대표는 "일본에서는 컴투스 재팬이라는 이름을 가능하면 안 쓰고 게임 브랜드를 메인으로 브랜딩한다"며, 각 게임이 독립적인 브랜드로 인식되길 원한다고 밝혔다. 22년간 일본 시장을 지켜본 그의 시선에서 바라본 일본 게임 시장의 현재와 미래, 그리고 컴투스의 전략을 들어보자.
Q : '도원암귀'가 일본에서 호평을 받고 있는데 앞으로의 청사진은? 그리고 언론에 처음 등장한 소감은?
도원암귀는 현재 1쿨 방영 중이며 2쿨도 예정되어 있어 일본 유저들의 관심이 높다. 애니메이션의 퀄리티가 좋아 단행본 판매량도 처음 접촉했을 당시 200만 부에서 현재 400만 부로 단기간에 증가했다. IP 콘텐츠의 장점은 무한정에 가까운 생명력이 있기 때문에 조급하지 않게 준비하고 있다. 다만 IP 홀더들과 협의하며 전개해야 하는 부분이라 향후 계획은 조율하면서 작업할 예정이다. 이런 기자회견 자체를 전혀 예상하지 못했고 원래는 가벼운 대화만 생각했는데 많은 분들이 와서 놀라운 상황이다.
Q : 컴투스 재팬은 어떤 스타일과 기준으로 운영해왔나?
가장 중요한 철학은 "해당 문화에 적합한 로컬라이즈"다. 단순한 번역이 아니라 일본 문화에서 유저들이 위화감 없이 가장 잘 받아들일 수 있는 언어로 작업하는 것에 중점을 둔다. 그래서 일본어 로컬라이즈는 모두 일본 법인에서 담당하고 있다. 일본은 문화적으로 예상과 다른 요소들이 상당히 많기 때문에 이런 세세한 위화감들을 하나하나 잡아나가는 부분에 신경을 많이 쓰고 있다.
Q : '도원암귀'를 게임화로 선택한 이유와 목표 성과는?
본사 대표가 상당히 관심을 많이 가지고 있던 특이한 만화였다. 열혈 전투 만화임에도 불구하고 여성 팬들이 엄청나게 많은 독특한 IP다. 틱톡 바이럴을 통해 "멋있는 남성들이 등장하는 만화"를 찾는 부분에서 이슈가 되면서 폭발하게 됐다. 등장하는 여성 캐릭터들도 독특한 스타일을 가지고 있어 해외에서도 좋은 반응이 있을 것으로 예상한다. 구체적인 성과 목표는 현 단계에서 말하기 어려우며, IP 홀더들과 협의하면서 어느 정도 규모로 가져나갈지 결정할 예정이다.
Q : 프로야구 라이징은 일본에서 강력한 경쟁사가 있는데 시장 공략 비전과 점유율 향상 방안은?
야구 게임은 전 세계적으로 봤을 때 코나미가 대부분의 매출을 차지하지만, 일본을 제외하고 생각하면 컴투스가 상당 부분의 점유율을 가지고 있어 양대 산맥이라고 생각한다. 일본 시장에서는 코나미가 거의 10년 이상 독점해온 국민 게임 같은 포지셔닝이 있었는데, 그 위치에 도전장을 내밀 수 있는 업체는 컴투스 정도밖에 없다고 본다.
야구 게임의 특징은 기록 경기이기 때문에 한 해 두 해 계속 쌓아나가면서 콘텐츠 퀄리티와 마켓 이해도가 올라간다. 처음부터 코나미를 이기겠다는 생각보다는 건전한 경쟁 관계를 통해 시장 자체를 키우고 그 과정에서 노하우와 경험을 쌓아 다른 장르에도 적용하는 장기적 관점으로 접근하고 있다.
Q : 도원암귀가 탄탄한 팬층을 확보한 상황에서 게임이 기대를 충족하지 못할 경우의 우려는?
IP 게임, 특히 일본 IP 게임의 특징은 IP 홀더가 승인하지 않으면 콘텐츠가 나올 수 없다는 점이다. 이는 팬들을 무조건 기본적으로 만족시킨다는 전제로 깔고 가는 콘텐츠라고 볼 수 있다. 컴투스가 이런 기회를 얻게 된 이유는 개발력에 대해 IP 홀더 측에서 상당히 납득했기 때문이다. 현재 팀에 참여한 프로듀서와 개발자들이 엄청난 스피드와 퀄리티를 뽑아낼 수 있는 분들이어서 만족스러운 콘텐츠를 만들어낼 것으로 기대한다. 팬층을 만족시킬 수 없는 콘텐츠는 기본적으로 출시가 안 된다고 보면 된다.
Q : 스타시드를 일본에서 출시할 때 구체적으로 어떤 부분을 바꿨나? 그리고 TGS 부스 디자인은 누가 제안했나?
스타시드는 외형적으로 보이는 부분 말고는 다 바꿨다. 밸런스부터 시작해서 스토리는 처음부터 끝까지 전부 직접 작성했고, 마케팅 소재나 기타 여러 부분들도 직접 컨트롤하고 있다. 기존 캐릭터와의 교류 부분이 한 번 쓰고 버려지는 콘텐츠였다면, AI 채팅 기능을 추가해서 실제 현실과 커뮤니케이션하는 방식으로 변경했다. 이 부분이 좋은 반응을 얻어 경쟁이 치열한 상황에서도 버티고 있다. TGS 부스는 이벤트 대행사, 내부 실무진, 작가, IP 홀더 관련 제작위원들이 모인 자리에서 결정됐다. 도원남기를 상징하는 모모타로의 검은색과 오니의 빨간색을 강조하는 형태로 디자인했다.
Q : 컴투스는 다양한 장르를 전개하는데 이런 포트폴리오를 구성한 이유와 미래 전략은?
컴투스는 수집형 RPG인 서머너즈워를 통해 10년 이상 운영을 하면서 세계적으로도 거의 없는 노하우를 쌓았다. 스포츠 게임 관련해서도 이미 오래된 노하우로 포트폴리오가 완성되어 있다. 남은 장르 중에서 서브컬처를 선택했는데, 개인적으로 서브컬처 게임을 좋아하고 컴투스가 이 장르도 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다. 그래서 스타시드를 일본에 정식 출시할 때 많은 부분을 바꿔가며 도전했다. 도원암귀 같은 IP 콘텐츠는 하나의 장르라기보다는 성공한 IP와 게임성을 결합하는 형태이고, 서브컬처 쪽은 독자적인 경험을 쌓아나가려 노력하고 있다.
Q : 일본과 한국 게이머들의 성향 차이는? 그리고 '도원암귀'의 크로스 플레이로 콘솔 게이머들에게 어떻게 어필할 것인가?
한국 콘텐츠들은 유저들에게 분노와 경쟁 같은 감성을 심어주는 키워드가 많다. MMO나 경쟁형 게임이 한국의 주류다. 반면 일본은 MMO 시장이 거의 존재하지 않는다. 남들과 경쟁하기보다는 혼자서 수집하고 컬렉션하며 자기 만족에 더 시간을 투자하는 성향이다.
좋아하는 IP에 대한 팬 문화가 존재하고, 1등이 되겠다는 생각보다는 함께 밀어주고 실수했을 때도 이해하려 하는 문화 차이가 있다. 게임은 종합예술 같은 것이라 사람의 감성을 움직여야 하는데, 숫자나 데이터로만 접근하면 실패할 수밖에 없다. 도원남기는 현재 iOS, 안드로이드, PC 스팀으로 준비되고 있으며, 나머지 플랫폼에 대해서는 개발 진척을 보며 파악할 예정이다.
Q : 일본 게임 산업의 현재 상황 진단과 미래 전망, 그리고 컴투스의 일본 시장 전략은?
지표나 숫자보다는 개인 유저로서 게임이 정말 재미있는지, 계속 하고 싶은지, 텐션이 유지되는지를 느껴보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지금까지 일본에서는 유저의 만족과 수집을 이끌어주는 콘텐츠들이 상위권을 유지해왔다. 이번 TGS에서는 새로운 도전을 하는 콘텐츠들이 등장하고 있어 패러다임이 바뀔 것 같다. 가챠를 없애겠다는 콘텐츠들이 등장하는 것은 유저들이 정말 바라는 것을 게임 업체들이 이해해나가고 있는 단계로 긍정적으로 본다. 이런 트렌드와 잘 맞아떨어지면 새로운 게임 패러다임이 나올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
Q : 도쿄게임쇼에서 느낀 변화된 점은?
원래 도쿄게임쇼는 항상 콘솔 콘텐츠의 메인 무대 같은 느낌이었고, 모바일은 소외되거나 유저들의 관심이 적었다. 그런데 모바일의 퀄리티가 점점 올라오면서 그 경계가 많이 허물어지고 있다. 대부분의 업체들이 출시할 때 iOS, 안드로이드만이 아니라 PC, 콘솔까지 동시에 출시해서 플랫폼의 장벽이 점점 얇아지고 있다. 올해도 엄청난 콘텐츠들이 PC나 콘솔뿐만 아니라 모바일용으로도 나오고 있어, 이런 변화가 TGS와 게임 업체들의 방향성 변화로 드러나고 있다.
Q : 앞으로 컴투스 재팬은 어떤 방향으로 갈 것이며, 어떤 기업으로 기억되고 싶은가?
이런 자리 자체가 개인적으로는 안 맞는 옷을 입은 느낌이다. 컴투스라는 이름 하에서 법인이 맡은 바 역할을 잘 하고, 서브컬처를 포함한 새로운 영역을 만들어서 본체가 잘 흡수해 그룹 전체가 건강하게 성장하는 데 하나의 역할을 하고 싶다. 앞으로 나서는 것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일본에서는 컴투스 재팬이라는 이름을 가능하면 안 쓰고 게임 브랜드를 메인으로 브랜딩하고 있다. 서머너즈워나 프로야구 라이징도 항상 게임 브랜드로 인식시켜 나가고 있다. 하나의 거대한 브랜드는 컴투스, 그리고 그 콘텐츠에 대해서는 각 게임 타이틀로 각인되도록 노력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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